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칼럼]안철수와 '나꼼수'의 역설

정인숙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만으로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는 풍자 대담 프로그램인 「나는 꼼수다」(일명 나꼼수). 이 둘은 닮았다. 품격 면에서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만 그들을 향한 열광의 기저에 깔린 국민들의 정서가 동일하다.

왜 대다수 국민들은 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바른 정치’ ‘바른 언론’에 대한 갈망이 아닌가 싶다.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에 손꼽혔던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자마자 지금까지 순위를 다투던 후보들의 지지도 판도가 바뀌고 순식간에 그는 여론지지도 1순위가 되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 중 서울로 주소를 옮겨서라도 안철수를 찍어주겠다는 열혈팬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이나 염증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바라는 대중의 갈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낡은 정치, 양당 정치, 좌우 이념에 대한 분명한 거부이자 ‘바른 정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보여준다.

안철수가 그동안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보여주었던 반듯한 행보가 국민들의 삶의 영역에 어떤 신선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정치권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정서의 기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나꼼수」의 인기는 기성언론에 대한 질타이자 조소이며, 새로운 언론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보여준다. 대중은 더 이상 제도권 언론을 믿지 않는다.

제도권 언론은 이미 오래전 권언유착으로 스스로 권력기관이 되었으며 정치영역에 대한 감시기능을 상실했다. 또 상업성의 덫에 빠져 언론 스스로의 경제이익을 추구하느라 뉴스의 정도(正道)를 던져버렸다.

‘제4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죽은 언론에 대해 갑갑증과 분노를 느끼던 대중은 쾌도난마 같은 정치방송 「나꼼수」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나꼼수」는 대안언론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이다. 감옥갈 각오로 진행하는 그들의 언어는 거칠고 무례하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을 향한 거침없는 입담에 대중은 왠지 막혔던 언로가 뚫리고 정치적 체증이 가라앉는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언론은 국민이 「나꼼수」에 보이는 시그널의 함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철수와 「나꼼수」는 그래서 닮았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올바르지 않은 정치’ ‘올바르지 않은 언론’이 제발 변화되기를 바라는 대중의 갈망이 만들어낸 희망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희망의 아이콘 앞에서 우울했다. 정치판을 잘 아는 사람들이 우려한 것처럼 안철수의 신선한 도전이 아마추어리즘의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그로 인해 정말 아까운 인재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했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출마를 접은 것은 다행이지만 순수성과 비정치성의 상징이었던 그를 정치판으로 걸어가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정치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나꼼수>와 같은 품격제로 방송을 계속 듣고 싶지 않다. 제도권의 무개념 뉴스 방송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낄낄거리며 현직 대통령을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는 품격제로 방송이 오래 계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롱과 풍자의 형식이 아니라 제도권 뉴스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가 좀 더 품격있게 전달되고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안철수와 「나꼼수」의 등장에 열광하면서도 희망과 안타까움, 기대와 우울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철수와 「나꼼수」가 대한민국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 영역과 언론 영역에 적색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