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국제학회에 대한 추문으로 학계가 떠들썩하다. 지난달 19일 뉴스타파와 MBC의 공동 보도에 따르면, 와셋(WASET)이라는 ‘해적’ 학술단체가 개최한 ‘가짜’ 학술대회에 한국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한다. 참여자를 나라별로 집계했더니 한국 연구자가 전체 5위였다.

 

이들 언론사가 폭로한 내용은 놀라운 정도를 넘어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로봇이 대필한 가짜 논문을 제출해도 논문 발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70만원 상당의 참가비를 지불하면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에서 발표할 수 있다. 비전공자가 모인 학회장에서 논문 발표를 하고도 운이 좋으면 우수논문상을 받을 수 있다.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우리 학계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성실한 연구자들도 실망·분노한 건 마찬가지다. 진짜 문제는 실망과 분노 너머에 있다. 이런 폭로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모호한 절망감이 있기 때문이다.

 

해결이 뭐가 어렵다고? 당신은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해적’ 학회 가입자를 찾아내서 창피를 주고, ‘가짜’ 학술대회 참가 비용을 일괄 조사해서 규모를 파악하고, 공적 자금으로 지원했던 학회 출장비를 환수하면 되지 않는가. 과연 그렇다. 이렇게 하면 과거 ‘가짜’ 학술대회 참가행위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애초에 그런 학술대회에 참가하려 했던 동기를 교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실한 관행을 없앤다고 성실한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요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조금 에둘러 가자.

 

학계와 언론계는 서로 좋아한 적이 별로 없다. 아마 서로 미운 구석이 닮아서 그럴지 모른다. 진실을 확립하겠다고 열을 내지만, 사실도 아닌 것을 붙들고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자기 영역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에 눈을 감는다. 무엇보다 외부 영향력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면서 실은 연구비와 광고비를 쥐고 있는 자에게 한없이 비굴하다. ‘해적’ 학술단체와 ‘가짜’ 학술대회는 ‘사이비’ 언론과 ‘가짜’ 뉴스만큼이나 새롭고 기막힌 현상인 것이다.

 

언론과 학문 간의 친연성은 보다 깊은 곳에서 시작한다. 이 두 제도는 자유에 기초해서 진실을 추구하는데, 이게 정말 그런지 다른 누구도 대신해서 확인해 줄 수 없다. 자율성이 핵심인 제도라는 뜻이다. 자유주의 국가는 이 두 제도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자유를 입증한다.

 

사이비 언론을 없애겠다고 정부, 공공기관, 또는 제3의 독립적 기구가 언론을 심사해서 선별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다. 언론 자유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용인하는 언론을 자유언론이라 할 수 없는데, 자유롭지 않은 언론이란 ‘둥근 네모’와 유사하다. 당착이란 뜻이다.

 

해적질을 하건 산적질을 하건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부실한 학회 운영을 외부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학술적인 행위와 비학술적인 행위를 구분하는 일을 외부 기구에 맡기는 학회를 학회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자유로운 언론이 ‘가짜’ 뉴스를 낸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그런다면 말이다. 여기서 ‘가짜’ 뉴스란 오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기사처럼 보이지만 광고나 다름없는 보도, 객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은밀한 사심을 반영한 보도, 사실을 취사선택해 한쪽으로 몰아치는 보도. 이를 ‘가짜’ 뉴스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역시 쉽지 않다. 당신이 보기에는 홍보이고, 사심이고, 편향일지라도 그것을 진심으로 그리고 전문적 판단에 따라 ‘뉴스 가치’가 있어서 보도했다고 주장하는 언론인이 있는 한 말이다.

 

요컨대,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구별할 수 있을지언정 ‘진짜’ 뉴스가 별도로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부실하고 의심스러운 내용이라 할지라도 언론이 보도하면 뉴스가 된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아무리 부실하고 의심스러운 내용이라도 스스로 학회라 칭하는 단체가 채택하면 논문이 된다.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면, 명백히 돈만 밝히는 집단이 품질이 의심스러운 작문을 받아서 ‘논문’이라고 불러주면서 ‘학회’라는 명칭을 사용해 발표 기회를 주었다. 마치 명백히 돈만 밝히는 언론사가 품질이 의심스러운 짜깁기 기사에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을 붙여 ‘단독’이라고 기사를 내는 일처럼 말이다.

 

부실한 기사에 대한 비판과 개탄이 끊이지 않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런 기사가 모두 고품질 뉴스로 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기사쓰기 관행을 바꿔서 고품질 뉴스를 내겠다고 다짐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