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동아일보의 칼럼 ‘여류의 일일’에서 아나운서 강영숙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녹음이 아니고 직접 연사가 방송하는 것을 ‘생방송’이라고 말하고 있다. 잘 모르시는 연사는 ‘그럼 녹음방송은 죽은 방송이 되겠군!’ 하며 웃는 분도 간혹 없지 않다.” 산토끼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묻는 것 같은 객쩍은 아재 개그는 60여년 전에도 여전했습니다.

 

정범준의 책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에 따르면 1956년 시작한 한국의 TV 방송은 모두 라이브였습니다. 드라마는 연극과 같았고 광고 또한 생방송이었으니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었겠네요. 드라마에서 실수를 한 연기자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연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합니다. 끝나고 난 뒤에 실수한 사람이 어떤 질타를 받았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미타니 고키 감독의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연속극을 둘러싼 좌충우돌의 스토리입니다. 이 영화에서 평범한 주부가 쓴 각본은 고집 센 배우들과 계속된 문제 속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영화 속 온갖 어려움들은 어찌어찌 해결되며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향해 가는데 엉망진창의 전개에 빠져들며 몰입한 트럭 운전사 청취자가 방송국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는 우연의 산물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는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렇듯 생방송은 나름의 묘미를 가집니다. 어릴 적 가장 큰 생방송 이벤트는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의 국제 프로레슬링이었다고 말하는 어른들을 요즘도 종종 뵙습니다. ‘어차피 짜고 치는 것’이라 말하는 냉소적인 친구의 말은 마치 산타가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라, 팬심을 담은 박치기로 그에게 응수했던 경험을 지금도 나누는 분들입니다. 각본없는 스포츠의 결과를 점치며 졸이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그 시절의 느낌은 월드컵과 한·일전마다 다음 세대에서도 확인됩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아침마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그 당시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 뉴스가 아닌 다음에야 돌발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생방송은 만드는 사람들에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형식입니다.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한 출연자가 벌인 전라 노출의 해프닝 이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방송들은 5분 지연 방송을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오버랩됩니다.

 

이에 반해 녹화와 편집은 원래의 모습에서 흠결을 메워줍니다만, 이 역시 악마의 편집이란 오명 속에 출연진들로부터 민원을 받는 일이 생기며 과연 방송이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나 하는 불신을 야기합니다. 포토샵을 넘어 동영상보정까지 가능하다는 인공지능의 결과들이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과연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모사해서 가짜로 생성해 낸 연설 영상을 보면 우리 눈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새삼 느끼게 해주지요.

 

1956년 시작했던 흑백 TV 속 라이브 방송은 이제 한 갑자를 건너 유튜브 속 크리에이터로 다시금 다가와 우리와 채팅창을 통한 상호작용을 시작합니다. 시청자가 만든 촌철살인의 댓글은 여러 사람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주고 크리에이터의 선택과 멘션은 무대 위에 올라온 콘서트의 열혈관객과 같이 동질감을 넘어 황홀한 주목의 기쁨을 나누어 줍니다. 아프리카TV의 별풍선과 같은 유튜브의 슈퍼챗은 직접 응원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주었습니다.

 

매일같이 무대에 선 노련한 배우는 관객에게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재능과 단련의 결합 속에서 탄생한 슈퍼 인류는 언제 어디서나 관객들과 조우합니다. 이에 반해 예쁘게 트레이닝받은 예전의 연예인은 생방송의 중압감을 견디기 쉽지 않습니다. 정해진 각본을 처리하던 기존 방송의 출연진들과 다르게 각본없는 매일의 생방송에서 팬들과의 대화로 단련된 크리에이터들은 시스템의 고장으로 채팅창이 멈추어 상호작용이 어려워지자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합니다. 그들은 타고난 생방송 전문 방송인들인 것이지요.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 역시 생방송에 참여합니다. 매일 저녁 최애캐의 ‘눕방’으로 일과를 끝내는 팬들은, 혜자스러운 멤버들의 배려에 꿈속에서 만날 것을 희망하며 달콤한 잠자리로 향합니다. 그와 내가 함께하는, 나와 그가 상호작용하는 라이브의 출현은 거짓되지 않고, 꾸미지 않은, 그리고 진정한 그를 만나는 것 같은 매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생방송의 묘미는 무엇일까요? 거짓없이 지금의 이 순간을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이어서일까요? 혹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흔들림과 실수없이 주어진 몫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대견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일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도 라이브입니다. 삶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기에 매번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누군가의 매일의 생방송이 안전하게 끝나며 그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삶도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송대관의 노래 ‘인생은 생방송’의 가사처럼 “태어난 그날부터 즉석 연기로 세상을 줄타기”하며, 인생은 “재방송 안돼 녹화도 안돼 오늘도 나 홀로 주인공”이니까요.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