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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김종목의 미디어잡설

그들만의 ‘국익’

*이 글은 <주간경향>에 연재중인 [정동늬우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뒷북 수사’로 일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 직원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처벌해도 실익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의 범행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사법처리에 이르기 어렵다는 뉘앙스였다. 조 청장은 ‘국정원이 그랬다고 하면 수사 대상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국익을 위해 한 것인데…”라며 이같이 말했다.(2011년 2월 22일자, 진실규명은커녕 눈치만 보는 경찰)

국익을 명분으로 부당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사진은 지난해 11월 9일 정부의 UAE 파병동의안 의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파병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반전평화연대 소속 한 회원. | 반전평화연대 제공


수사·사법기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말이 또 있다. 바로 ‘국익’이다. ‘국익’이란 이유로 잡아넣을 때도 많고, 같은 이유로 풀어줄 때도 많다. 불철주야 국익 창출, 경제성장에 앞장섰다는 재벌들이 방면 대상이다. 정치인들도 덩달아 혜택을 받기도 한다. 재계의 앞날까지 걱정하는 눈물겨운 ‘국익보호법’ 주역은 검찰. 1990년대 수서비리 사건 때 검찰은 여당인 민자당의 세 최고위원과 야당인 평민당에 제공된 정치자금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당시 내세운 명분은 ‘국익 차원의 수사 종결’. 2000년대에도 ‘국익’을 빙자한 검찰의 재벌 선처는 이어진다. ‘수사로 말한다’는 검찰? ‘수사 외적인 것’으로도 종종 말하곤 한다.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두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8일 비자금 조성행위에 관여한 두산 총수 일가를 모두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불구속한 배경에 대해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어서 동계올림픽과 IOC 총회 유치 등 외교에 미칠 국익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는 수사 외적 요인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2005년 11월 10일자, 두산 총수 일가 4명 모두 불구속- 검찰 국익 고려 논란)

재벌도 이왕이면 IOC 위원 같은 걸 하면 더 큰 보은을 받을 수 있다. 엄정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과 검찰도 ‘IOC 재벌’ 앞에선 껌뻑 죽는다. 불법을 저지르기엔 올림픽 유치 시즌이 적기. 노조도 세계노동자대회 유치할 것!

이귀남 법무장관은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통해 현재 정지 중인 (IOC) 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위한 좀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각계각층의 청원을 반영하는 한편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이번 조치를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2009년 12월 30일자, 이건희 특별사면, 국익 이유로 표정 바꾼 MB 법치)

이들의 ‘법과 원칙’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상대성’이 이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의 보편타당한 준칙. ‘불법필벌(不法必罰)’은 노조, 양심수, 쥐그림 대학강사, 미네르바, 촛불 등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다. 미네르바 구속사건이 해외 토픽에 나고, 쥐그림 대학강사 때문에 해외 지식인들이 성명을 내고, 유엔 인권보고서에 인권 후퇴 지적이 나오는 걸 두고 ‘국제망신’이라 부르면 그게 바로 국익을 해치는 행위다. 이들의 국익은 노동자·소수자·약자·시민의 이익과는 자주 상충되는데, 미국의 이익과는 종종 결부된다. 검찰은 물론 이 ‘국익’을 위해 앞장선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가해 미군들에 대한 무죄평결이 있은 지 1년여 만에 한국 검찰의 미군에 대한 수사기록이 공개된다. 이는 검찰이 국익과 수사상 이유 등으로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해온 관행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2003년 12월 5일자, 여중생 사망 수사기록 공개 판결)

아! 대한‘미국’. 거리 선전전도 불사.

한나라당 의원들과 대한상의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잇따라 개최하자 축산농들은 “정부와 여당이 합작해 농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중략) 한우협회 홍성지회 김봉수 회장(56)은 “병실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시식회를 TV 화면으로 지켜봤는데 너무도 억울해 눈물이 났다”며 “위기에 처한 축산농가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외국산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냐”고 분개했다.(2008년 7월 10일자, 한우 시식회 해도 시원찮은데)

문화재보호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 가능. 문화재청은 검찰 못지않은 ‘국익보호법’의 수호자다. 국익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문화재청이 창경궁 안에서 전열기 등을 사용한 만찬을 허용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9일 저녁 국보 226호인 창경궁 명정전 앞마당에서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CGN) 연차총회 만찬이 열렸다. (중략) 문화재청은 “국익에 도움이 되고 우리 궁궐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판단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창경궁에는 일절 음식 반입이 금지돼 일반인들은 도시락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2008년 6월 21일자, 국보 창경궁서 ‘위험한 만찬’)

이번 정권은 ‘국익 창출’의 여러 신모델을 개발하기도 한다. 비즈니스 파병은 그 모델 중 하나이고, ‘안보수출론’은 새로운 수출 담론이다. 군인들은 곧 산업역군. 국방부 회의실에 ‘수출 1억 달러 달성 목표’ 구호가 이미 붙었을지 모를 일이다.

국방부는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군 파견동의안이 통과함에 따라 다음달 11일 ‘UAE 군사훈련협력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그러나 과거 국군의 13차례 파병이 모두 헌법 5조 ‘국제평화’를 법적 근거로 한 반면, 이번에는 헌법에도 없는 ‘국익 창출’을 명분으로 삼으면서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또 ‘국익 창출’이란 표현을 통해 정부 스스로 UAE 파병이 사실상 원전 수출의 대가인 ‘비즈니스형 파병’임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2010년 12월 13일자, UAE 파병 위헌 논란, 정부 국익 창출 명분 내세워 비즈니스 파병 자인)

이전 정권도 이라크 파병 때 ‘국익’론을 펼쳤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2003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의 침략전쟁을 거드는 것을 포함하여 어떤 일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만일 국익이란 이름 하에 국가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20세기 초 일본이 자기네의 국익을 위해 한국을 침략하여 강점한 것 역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지금은 ‘짐이 곧 국가’였던 절대군주제 시대도 아니고, 군사반란의 주범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는 시기도 아니다. 절대군주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으로, 독재자의 정권 유지가 국가 안보로 간주되는 그런 시기는 지나가버렸다.(2003년 9월 19일자, 이라크 추가파병론의 오류)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