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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기고]군가처럼 전투적인 ‘KBS 평창 올림픽 응원가’

KBS가 평창 동계올림픽 응원가를 발표했다. ‘한판 붙자’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이미 발표한 대중가수의 노래에서 가사를 손본 것인데 노랫말의 결이 사뭇 거칠고 사납다. 가사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한판 붙자 너 오늘 임자 만났다/ 한판 붙자 완전히 부숴주겠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혼내 줄 테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놈 있다 하더니 예끼 네 이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너는 겁쟁이 식은 죽 먹기/ 까불다가는 큰코다친다/ 덤벼 볼 테면 덤벼 보아라/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밀어붙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판사판 끝장을 보자”

 

이 가사에서 ‘한판 붙자 완전히 부숴주겠다’는 표현은 전투적·호전적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동영상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는 가수의 표정이 매우 표독스럽다. 응원가가 자기편이 이기도록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표현은 지나치다. 이것은 ‘초전박살’의 군대 구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평화와 친선을 내세우는 올림픽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을 이렇게 적대시해도 된단 말인가?

 

거칠고 호전적인 표현은 이것만이 아니다. ‘혼내 줄 테다’ ‘예끼 네 이놈’ ‘까불다가는 큰코다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판사판 끝장을 보자’ 등은 정제되고 세련된 가사라고 할 수 없다.

 

아는 바와 같이 KBS는 공영방송국으로서 우리말을 세련되고 아름답게 하여 모든 국민이 건강한 언어생활을 누리게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거칠고 전투적인 응원가를 제작하여 방송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막중한 책임감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평화올림픽’이라는 기치 아래 펼쳐질 평창 올림픽의 주인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다. 주인인 우리는 먼 길 찾아온 손님들이 서로 신나게 어울려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외국 선수들을 맞이하고 그들이 닦아온 실력을 정정당당하게 펼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주인이 손님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대한다면 잔치는 덧없이 끝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KBS의 평창 올림픽 응원가는 모든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가사로 바꿔야 한다. 무조건 우리나라만 이겨야 한다는 속 좁은 응원가 대신 각국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공익적·친선적인 응원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응원가는 아니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가 왜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하게 기억되고 있는가를 잘 헤아려 보길 바란다.

 

<방운규 | 평택대 국문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