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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두루미 ‘단단’ 네 무리속으로 날아올라라!

ㆍ대만서 온 국제미아… 서울대공원 야생 방사 성공할까

두루미 ‘단단’은 국제 미아였다. 신나게 날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이라고, 길을 잃어도 아주 제대로 잃었다. 전 세계 모든 두루미들이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지나치지 않았다는 대만에 불시착한 것이다. 오호 통재라. 단단은 친구 찾기도, 이동도 포기했다. 명색이 철새인데도 불구하고 대만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대만의 스타가 됐다.


                                  대만에서 온 두루미 단단(왼쪽)은 서울대공원의 다른 두루미들보다 덩치가 컸다.
                                    하지만 대만의 풍토가 잘 맞지 않았는지 정수리의 붉은 빛이 퇴색되어 있었다.
  대공원 환경에 점차 적응하면서 단단의 상태는 호전됐다. 지난 11월 합사한 암컷 두루미(오른쪽)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내년 11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에 방사될 예정인 단단은 이르면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비행 훈련을 시작한다. | 김창길기자



이 두루미가 야생 적응 훈련을 받기 위해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 와 있다. 훈련이 끝나면 단단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한국과 대만, 미국의 관계자들이 단단의 방사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지금 단단은 대공원 깊은 곳에서 장막에 가려진 채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사람과의 잦은 접촉은 야생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19일 이 두루미를 만나러 대공원을 찾았을 때도 관계자들은 단단이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썼다.


대만 스타 단단, 한국에 오다

2004년 1월, 길 잃은 두루미 한 마리가 발견됐다. 대만 신죽 지역에서였다. 대만 사람들은 1934년 이후 두루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길조라며 기뻐했고, 정수리가 붉은 이 새에게 ‘단단(丹丹)’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우아한 몸짓이 아름다웠던 단단은 ‘국빈급’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으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두루미는 철새지만 단단은 대만을 떠나지 않았다. 무리에서 낙오해 대만에 내린 때부터 사실상 텃새처럼 살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같은해 9월 단단은 여느 때처럼 신죽을 배회하다 이 지역의 공군비행장으로 날아들었다. 비행장에서 새는 위험하고 번거로운 존재다. 새가 비행기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는 날엔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지 측은 새를 내쫓기 위해 산탄을 쏘았는데 이중 6개가 단단의 몸에 맞았다. 놀란 공군은 서둘러 단단을 구조했고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의 야생동물 구조센터로 긴급 이송했다.

단단의 부상은 대단한 뉴스였다. 70년 만에 찾아온 행운의 상징이 총탄을 맞고 생사의 기로에 서있었다. 동물원은 최선을 다했다. 수술로 산탄을 제거했고 정성으로 간호했다.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으므로 억지로 부리를 벌려 사료를 먹였다. 제 발로 설 수 있도록 보조 기구도 제작했다.

덕분에 단단은 이듬해인 2005년 초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죽의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또 총탄을 맞아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철새인 두루미가 한 곳에 정주한다니 말이 안 된다. 고심하던 동물원은 단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전 세계의 두루미 관리를 총괄하는 미국 ‘국제두루미재단(ICF)’은 단단을 조사한 끝에 자연 방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남은 일은 단단에게 야생 적응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타이베이 동물원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국의 서울대공원에 이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해마다 두루미들이 거쳐가는 한국은 단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에 적합한 곳이다. 양쪽 동물원 사람들은 서울과 타이베이를 오가며 단단의 이사를 준비했다. 지난 3월28일 사연 많은 두루미 단단은 그렇게 한국에 왔다. 서울대공원이 주도하고 대만과 미국 ICF가 관여하는 두루미 야생 방사 공동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보살피되 길들이지 않는다

가둬 기르는 짐승에게 야생을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아온 동물이 삭풍 몰아치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세계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단단을 맡은 대공원의 고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의 손을 타면 탈수록 두루미는 야생과 멀어진다. 그렇다고 밥을 굶길 수는 없다. 돌보고 관찰하면서도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공원의 동물연구실 연구원과 사육사, 수의사 등 10여명의 인력이 단단을 살피고 있다.

단단은 서울대공원에 오자마자 ‘특실’을 배정받았다. 대공원이 보유하고 있는 두루미와 황새, 펠리컨 등이 사는 ‘큰물새장’ 옆의 격리칸, 즉 독방이다. 바로 큰물새장에 넣었다가는 기존에 있던 두루미들한테 공격당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새들은 낯선 상대에게 굉장히 적대적이다. 서로 ‘안면’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단단을 보호하기 위해 격리칸 둘레에는 장막을 쳤다. 사육사조차 우리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대신 CCTV를 설치해 놓고 모니터를 통해 단단의 행태를 관찰한다. 사육사 지인환씨는 “단단은 식구라기보다 귀한 손님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인다”고 했다.

단단이 대공원에 와서 처음 받은 교육은 먹이 훈련이다. 대만에선 ‘환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밀웜(딱정벌레 애벌레) 같은 고단백식을 먹었다. 하지만 단단이 날아가야 할 강원도 철원이나 시베리아에 그런 고단백 먹이가 있을 리 없다.

대공원은 알곡 사료와 배추 등을 먹인다. 철원에 머무는 두루미들이 들판에 떨어진 알곡을 집어먹는 것과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민물고기를 사냥하는 것에 익숙해지라고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주기도 한다. 먹이를 주는 방법도 강아지 키우듯 밥그릇에 얌전하게 주면 안 된다. 음식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사람한테 얻어먹는 데 길이 들까봐 사육사가 하루에 한 번 우리 곳곳에 흩뿌려 놓는다. 알아서 찾아 먹으라는 뜻이다.

단단은 큰 말썽없이 잘 먹고 잘 잔다. 한국의 풍토가 몸에 잘 맞는지 건강도 더 좋아졌다. 정수리 부분이 붉다고 해서 두루미를 단정학(丹頂鶴)이라고 하는데, 단단의 정수리 빛깔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더욱 붉어졌다고 한다.

지난 11월엔 짝짓기를 했다. 두루미들은 한번 짝을 맺으면 무리를 따라 이동할 때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 자연에 방사했을 때 짝이 있으면 적어도 외톨이 신세는 모면할 수 있다. 무리에 섞이는 일도 혼자일 때보다 쉽다.

대공원은 암컷 ‘싱글’ 두루미 중에서 고르고 골라 단단의 짝을 찾았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급작스럽게 합사했을 경우 단단이 암컷을 공격하거나 암컷이 단단을 거부할 수 있다. 사육사는 둘이 친해질 시간을 준다. 우선 암컷을 단단의 옆방에 넣는다. 서로 경계심이 어느 정도 사라졌을 때 암컷은 단단의 우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 2주가 걸렸다. 어느 것 하나 조급하게 서둘러서 되는 일이 없다. 무엇이든 단단이 스스로 할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두루미 방사 성공의 첫 사례 될까

우리나라에는 두루미를 야생으로 돌려보내 성공한 사례가 없다. 1995년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가 사육하던 재두루미 한 쌍을 철원 비무장지대에 풀어준 적이 있으나 암컷이 방사 3일 만에 숨졌다. 이 재두루미는 트럭이 달려오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사람 손에 자란 탓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공원 사람들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개척자의 심정이다. 단단에게 야생의 습성이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보여 그나마 다행스럽다. 동료들이 날아오를 때 같이 따라나서야 한다는 본능을 단단이 잊지 않고 있다면 방사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아직 단단은 비행 훈련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일단 암컷 두루미와의 친화 훈련을 안정적 단계에 올려놓는 게 대공원의 목표다. 그 후엔 단단을 격리칸에서 큰물새장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비행 교육을 하게 된다. 그 시기는 이르면 내년 초가 될 것이다. 물론 비행 교육도 사육사가 강제로 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단단은 알아서 기존 두루미들과 친해져야 하고, 친구들이 날개를 펼 때 함께 날아야 한다.

단단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 생태연구팀의 유종태 팀장은 “당초엔 단단을 좀더 일찍 큰물새장에 합사할 계획이었는데 지금으로선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조금 더 기다리면서 단단이 암컷과 잘 지내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단단의 방사 예정일은 2009년 11월이다. 2009년은 대한민국 동물원 개장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11월은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두루미들이 철새 도래지인 철원에 내려앉는 계절이다. 유 팀장을 비롯한 대공원 사람들은 철원 강산리, 하갈리 등 방사 후보지 몇군데를 조사했다. 앞으로도 수 차례에 걸쳐 후보 지역을 답사한다. 여러 철새 군집 중 어떤 무리에 단단을 끼워넣을지 면밀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방사가 성공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대공원에서 적응 훈련을 아무리 장기간 시행해도 자연으로 돌려 보내기 전에는 훈련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대공원은 단단을 방사할 때 마이크로칩을 단단의 몸에 부착하는 방법으로 위치를 추적할 계획이다. 단단이 다른 철새들과 함께 한반도를 떠난다면 방사는 성공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단단을 찾아내 다시 잡아와야 한다. 보호하기 위해서다. 자연 상태에 풀어놓은 날개 달린 짐승을 포획한다는 것이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대공원 사람들은 실패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대공원 측은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6월 조류 전문가들을 모아 1차 워크숍을 열었다. 해외의 조류 방사 사례를 발표했고, 두루미가 성공적으로 서식지에 정착할 수 있는 요건을 검토했다. 내년 6월쯤 ICF 관계자와 시베리아의 두루미 전문가 등 해외 인사를 초청해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서울대공원 모의원 원장은 “우리나라에선 ‘두루미 한 마리가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외국에선 이번 일을 대단히 큰 사업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 원장은 “두루미 야생 방사는 누군가는 도전해야 할 일이고 모든 도전엔 시행착오가 있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이맘때, 단단은 예정대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대공원 사람들의 새해 소망은 단연 단단의 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