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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들풀의 미디어 뒤집기

[미디어 뒤집기] '신상 털기' 권하는 정신 나간 매체들

여교사와 중학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룬 기사들을 보자니,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를 보도하는 기사들도 한숨이 나온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여교사'를 검색어로 하여 나온 결과 화면이다. 모두 한 화면에 나온 그대로이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바람에 맨 밑 기사 하나만 추가해 붙였다.

이 매체들은 아주 수상쩍은 이미지 요소를 썼다
. 인물의 실루엣을 검게 깔고 그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붙여 놓았다. 희한하게도 약속이나 한 듯, 대여섯 개 매체가 똑같은 컨셉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나머지 한 매체는 인물을 내세우지 않고 단순히 배경을 검게 처리한 위에 역시 물음표를 붙였다.

그림자로 묘사된 인물도 한 군데에서만 중성적인 어깨 위 사진
(머그샷)을 썼을 뿐, 나머지는 모두 충분히 선정적인 여성의 상반신 그림을 깔았다.





  텍스트가 그렇듯, 모든 이미지에도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이 그림들에 들어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물음표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답은 아주 명료하다: "이 여자는 누굴까? 누굴까? 누굴까?" 이 질문을 아주 노골적으로,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던지고 있다.

이런 질문이 던질 만한 것인가
. 문제의 기사들은 이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리포팅일 뿐,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다. 이를테면 만일 이 사건이, 중학생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해서, 경찰이 가해자인 여성이 누구인지를 찾고 있다거나 하는 사건이라면 이런 이미지가 기사와 어울릴 수 있다. 이미지는 실제 사건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기사의 어떤 내용과도 유기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다. 억지로 우겨 넣은 그림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렇게 억지로 우겨 넣었나
. 기사의 소스가 되고 있는 강서경찰서의 보고서에는 이미 여교사의 신원이 확인되어 있을 것이며, 보고서를 본 기자들도 신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물음표가 누구를 향한 것인가는 명백하다. 독자들이다. "독자들이여, 이 여교사가 누굴까? 궁금하지? 궁금하지?" 이 그림들에서는 사건 관계자의 신상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려는 의도 말고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이런 보도 태도는 시끄러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을 휩쓰는 이른바
'신상 털기'를 적극 권장하는 꼴이다. 안 그래도 뒤져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 천지인데, 거기다 대고 노골적으로 "누굴까? 궁금하지? 찾아 봐, 찾아 봐" 한다. 이게 책임 있고 개념 있는 언론이 할 짓인가.

매체를 만드는 사람은 늘 기사에 쓸 사진이나 일러스트 같은 시각 요소를 걱정하게 된다
. 볼 거리가 있어야 가독성이 높아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넷에서는 지면의 제약을 덜 받는데다, 독자의 눈길을 놓고 다른 매체와 더 직접 경쟁해야 하므로 그 같은 요소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 고민을 모르지 않지만
, 이런 무책임한 이미지를 스스럼없이 내다 싣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지닌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이 아니라 독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무책임하고 선정적 매체임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딱히 이런 매체에 고무된 탓만은 아니겠지만
, 여기저기서 사건 관련자의 신상을 털고 까발리는 무개념 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또다른 범죄 행위나 진배없다. 무개념 사건에 무개념 보도, 무개념 개티즌. 총체적 무개념 사회로 치달아가는 이 막장 공화국의 끝은 대체 어디가 될 것인가. 단지 이 무개념들이 '일부'라는 데서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을 찾아야 하나.


이미지: 출처를 말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