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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유력후보가 등장했고 개인은 자유롭게 자신의 태도를 취했으며 지지를 드러냈다. 대선이 진화했으며 나쁘지 않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새로운 대통령의 며칠은 다른 신호들로 가득 찼다. 그는 신선한 자세와 태도, 군림하지 않는 습관과 문화를 드러냈다. 경쾌하고 빨랐다. 함께 드러난 옆의 사람들도 격의 없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주었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시민들 사이에 이중삼중의 칸막이가 생겨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는 ‘클리앙’과 ‘오늘의 유머’에 직접 메시지를 전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세월호 관련 오마이뉴스 기사 댓글에 댓글을 달았다. 우리가 기대한 다른 시대의 실체는 어쩌면 이런 것에 있었는지 모른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이 대통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다른 면도 있었다. 얼마 전 한국과 미국의 정권 인수와 변환기를 경험하고 공부한 이경은 박사와 함께 대선 평가를 해봤다. 주요한 발견 중 하나는 “나에게 보여줘봐(Show Me)” 시대의 도래다. 정부와 기업과 정치인이 “나를 따르라(Follow Me)”에서 “나를 믿어줘(Trust Me)”로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은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그 시대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개인은 그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해 오던 정당, 언론, 시민단체보다 크고 힘이 셌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진 시민은 언론의 기사를 보고 의견을 구하고 입장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개인들이 각자 필요한 미디어를 선택하고 정보를 취한다. 그렇게 스스로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미디어를 매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은 이러한 시스템의 공급처일 뿐이지 더 이상 공론의 장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사고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는 확증편향이 한 시대의 확고한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기존의 것들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대선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한, 자신이 지지하는 세계를 공고하게 연결하는 카카오친구 플러스의 엄청난 숫자 증가는 그 선상에 서 있다.

 

대선을 며칠 앞둔 날 서울시청을 지나는 좌석버스를 탔다. 빨간 야외복 잠바를 입은 젊은 할머니 한 분이 모바일폰을 붙잡고 계셨다. 놀라운 속도와 현란한 솜씨로 오른손 검지를 놀려 천지인 체계와 다양한 이모티콘을 활용하는 그분께 자꾸 눈이 갔다. 빨간 후보가 등장하는 정치 단톡방과 손자손녀가 등장하는 가족 단톡방이 동시 생방송되고 있었다. 흐뭇한 웃음과 비장한 표정이 교차했다. 기사는 공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진영과 주장을 위해 소모되고 있었다. 다른 색깔의 지지자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언론은 그렇게 의미 없이 소진되고 있었다.

 

이경은 박사는 옛날 기사를 찾아 보내주었다. 당대 최고의 칼럼리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2009년 3월18일자 뉴욕타임스에 쓴 글이다. 제목은 “더 데일리 미(The Daily Me).” 글은 그해 사망한 시애틀 어느 신문사 부고로 시작된다. 이어 “온라인에 가면, 우리는 스스로 에디터가 되고, 게이트키퍼가 된다. 우리 마음에 드는 뉴스와 오피니언을 선택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좋은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의 편견을 더 굳건하게 해주는 정보를 선호한다. 우리는 지성적으로는 (머리로는) 의견의 충돌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방음시설이 된 방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지는 얘기 역시 충격을 더한다. 이들은 중립적 입장과 연구보다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확고하게 해주는 지적 주장만을 받고 싶어하고 상대방에 대한 조금은 바보 같은 주장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논쟁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이러한 ‘일간 나’ 현상은 그렇지 않아도 밀폐되어 있는 각자의 정치적 방에 우리 자신을 더욱 단절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미국인들이 갈수록 그들을 커뮤니티, 클럽, 교회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고 주장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미디어테크놀로지 전공 교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이렇게 새로이 등장하는 뉴스 상품을 “더 데일리 미”라고 정의한 것이다.

 

칼럼의 결론은 양극화와 불관용이다. 대화를 진행할수록 보수주의자는 더 보수주의자가 되고 진보주의자는 더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 대목에서 나는 서늘해졌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의해 분노를 느끼지 않고, 우리의 신념은 더욱 굳어진다. 그로 인한 위험은 이러한 스스로 선택한 ‘뉴스’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회색에 가까운 세상이 우리 눈에는 검거나 혹은 하얗게 보이게 된다.”

 

언론은 시대에 뒤처져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언론은 ‘일간 나’ 시스템의 정보 공급처 중 하나가 될 뿐, 다양한 소통과 논의를 주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른 시대를 같은 경험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말을 언론에 건넨다. 그것이 대선이 언론에 주는 경고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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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