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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디지털 성범죄’와 언론의 의제 설정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웹하드 업체, 필터링 업체, 디지털 장의사 업체의 유착은 이미 지난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밝혀졌다. 웹하드 업체가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유포하는 동시에 필터링 업체를 함께 운영하여 사실상 유포를 방조하며, 디지털 장의사 업체까지 운영하는 등 총체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생산, 유통, 삭제가 하나의 산업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기자 경찰청장이 양 회장에 대한 수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웹하드 카르텔’ 문제를 수사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은 ‘웹하드 카르텔’ 문제 해결이 불법촬영물 유포 및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관련 보도들이 여전히 전형적으로 사건을 개인화하는 선정주의적 보도 방식을 택하거나, 개념 및 용어에 주의하지 않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보도들은 흔히 “도 넘은 폭행과 엽기 행각 영상이 공개돼 물의를 빚었다”는 등의 표현으로 양 회장을 묘사한다. 양 회장이 가장 주목을 받고 검색어에 오른 것 역시 남성 직원에 대한 갑질 폭행 사건이 최초 보도된 이후이다. 언론 보도 태도의 문제점 중 하나로 흔히 비판을 받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화하는 것이다. 양 회장 개인의 일탈적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이 문제가 비정상적인 한 개인을 처벌하면 해결된다는 인식을 낳는다.

 

물론 폭행이나 사찰 등 개인적 범죄는 법적으로 공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이를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보도가 중요하다. 언론은 흔히 사회의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를 정하고, 비정상의 영역에 있는 개인을 문제의 핵심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 비정상인 개인을 사회에서 말끔히 도려낼 수 있고, 사회의 대부분이 정상이었으므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신화를 유포한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문제는 비정상적인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산업화해온 구조와 이 구조가 유지될 수 있던 기반, 즉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유서 깊은 소비문화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관련 보도에서 음란물 유포를 부각하고 음란물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와 불법촬영물을 음란물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음란물 피해자, 몰래카메라, 연인 사이에 복수 목적으로 촬영된 영상물, 복수 포르노 등의 표현이 기사에서 난립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 역시, 디지털 성범죄가 근본적으로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인식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동의 없이 촬영한 것이거나, 혹은 당시에는 동의하고 촬영하였다고 해도 그 촬영물이 동의를 받지 않고 유포될 경우, 해당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은 무시하고 이를 ‘국산야동’이라고 불러왔던 문제가 여기에 단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다.

 

몰래 카메라나 복수 포르노란 표현은 가해자의 행위와 의도에 초점을 둔 표현이고, 이를 음란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불법촬영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복수 포르노라는 표현은 이러한 성적 이미지의 유포가 성폭력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한 것 혹은 모욕하고 피해를 입히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는 점을 누락시켜 버린다. 일련의 불법촬영 관련 사건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듯 여성의 성적 이미지는 이를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지속적인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처럼 사용된다.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가 강력한 가부장제적 문화 속에서 성적 이미지가 유포된다면 여성의 사회생활에 극단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폭력이다.

 

‘웹하드 카르텔’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폭력이 손쉽게 저질러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구축한 데 있다. 불법촬영물 유포가 용이할 뿐 아니라 큰 수익을 올리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심지어 이 산업이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재착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소위 디지털 장의사 사업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스스로 돈을 들여 자신의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기괴한 형태의 사업이었다. 유포와 관련된 자들이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어 왔다. 개인을 비정상화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음란물이라는 인식은 실제로 피해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2차 피해를 경험하거나 제대로 된 사법 판단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언론은 불법촬영 및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관련하여 구조적 문제 해결에 주목하는 의제 설정을 해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