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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여성의 죄’로 묘사되는 드라마 속 낙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다가오는 7월7일 낙태죄 위헌·폐지 퍼레이드를 진행할 것이라 예고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단체 주최의 집회는 2017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2017년 청구된, 낙태죄 조항 형법 269조 및 270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의 판결이 올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 형법 제270조 1항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법재판관 의견이 4 대 4로 갈린 상황에서, 합헌 판단의 근거로 제시된 것은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성학자들은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구도가 허구적이며 이 과정에서 여성의 실제 경험과 고통이 누락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국민의 법감정과 생명윤리 등이 강조되면서 낙태죄에 대해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

 

ⓒ 한국여성민우회·혜영

 

그런데 2018년 5월24일 법무부는 이러한 이분법보다도 더 뒤떨어진 보충의견서를 제출해 비난을 받았다.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존재라고 여성을 정의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후 낙태죄 합헌 의견은 고수하되 비난을 받은 부분을 담았던 보충의견서를 철회했지만, 여성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존재로, 그리고 인구 보존을 위해 출산해야 하는 도구적 존재로 정의하는 태도에서 성평등과 시민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이처럼 낙태를 하는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인식은 일부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낙태 문제가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의 중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는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문제를 거론했던 것처럼,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정상 가족의 구성을 사회의 주요 목표로 사고하는 경향이 우세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대중매체는 비혼 여성을 은연중에 비하하거나, 성별 임금 격차로 고통받고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젊은 여성의 문제를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특히 낙태의 묘사는 저출산이 문제라는 인식에서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죄로 그려진다. 낙태죄 폐지와 관련된 논쟁을 전하는 뉴스 보도에서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숨 쉬고 있는 아이를 죽이는 여성’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드라마 <기름진 멜로>에서는 남성에게 말하지 않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해피 시스터즈>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식으로 발언하자 남성이 네 엄마가 배안의 아기 죽인 살인자라고 여성의 자녀에게 말하겠다고 한다.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침 드라마 <나도 엄마야>에서는 현행법상 ‘불법’인 대리모에게 ‘합법적인 낙태’가 강요되는 상황이 그려진다. 한국 드라마 세계에서 이처럼 여성을 남성 중심으로 핏줄을 이어가는 도구로 취급하는 경우는 흔하다. 이 드라마는 불임 여성 대신 대리모를 구해서 남성 중심의 핏줄을 이으려는 욕망을 다루면서, ‘제대로 된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태를 종용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대리모인 여성이 산전 검사를 받은 결과, 태어날 아이가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상황처럼 ‘장애’를 사유로 하는 낙태는 현재 합법이다. 태아의 생명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갈라 선별하는 것, 즉 바람직한 재생산과 바람직하지 않은 재생산이 구별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현행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드라마에서 낙태를 강요하는 사람도, 불임을 이유로 이혼을 종용하는 사람도, 아이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혼란과 고통을 감당하는 사람도 모두 여성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임에도 외부에 의해 휩쓸려 다니는데 이때 여성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존재가 여성으로 나타난다. 남성 중심의 핏줄을 이어가는 것을 여성의 일로 만들고 이를 두고 여성을 성녀와 악녀로 갈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행 낙태죄가 생명을 선별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인 역사가 있으며, 사회적, 성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여성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단체의 주요한 목소리 중 하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은, 이와 같은 여성단체의 목소리가 타당하다는 것을, 즉 낙태죄가 어떻게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선택권을 제한하며 여성과 여성의 관계를 억압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이다. 성평등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첫걸음 중 하나가 임신한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드라마에서 여성의 몸이 출산의 매개로 그려지는 것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