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많아졌다고 해서 언론의 오보가 비례해서 늘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언론이 많아져서 그럴까. 지금은 오보가 넘친다. 더 심각한 것은 오보를 하고도 그 오보에 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외국 관련 보도에서는 오보가 많다. 오보에 직접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관련 보도는 특히 그렇다. 이건 오래된 현상이다. 일례로 김일성 주석은 실제 사망 이전에 우리 언론에서는 몇 번 죽었다. 1986년 김일성 사망을 세계적 특종이라고 보도했던 언론은 단 하루 만에 오보임이 밝혀지자, 북한이 ‘수령의 죽음’까지도 고의로 유포한다고 오히려 북한을 비난했다. 당연히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오보를 낸 언론의 책임은 사라졌다.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언론은 오보를 읽은 독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외국 관련 오보에 책임지지 않는 행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 언론은 외국 기사를 인용하면서 가끔 오역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과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정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2018년 3월 마침내 BBC 로라 비커 기자가 SNS를 통해 한국 기자들에게 자신의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로라 비커는 한국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외교의 천재’에서 ‘공산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있다고 보도했지만, 일부 보수 언론들은 BBC가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했다고 인용했다. 실력일까, 의도일까!

 

최근 태국에서 1명의 코치를 포함하여 13명이 동굴에 갇혀 있다가 구출됐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미담이었다. 처음 4명을 구출했다는 희소식을 전한 한 언론 기사의 제목은 ‘태국 언론 “구조된 4명 가운데 1명은 코치”’였다. 코치가 제일 먼저 구출됐다는 제목에 약간의 분노를 느낀 독자들에게 기사의 본문이 전한 내용은 ‘열흘간 소량의 음식을 모두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먼저 구조됐다고 알려졌다는 것이었다. 낚시성 제목에 화는 났겠지만, 독자들은 코치가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코치가 제일 마지막에 구출됐다. 진실이 밝혀진 이후 태국 언론을 인용해서 보도했던 언론은 이 오보 사건을 내부적으로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성을 했을까, 아니면 현지 사정을 직접 취재할 수 없는 사정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까?

 

사실 국내 사건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망한 김종필 전 총리에게 정부가 대통령에게나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온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훈장 수여를 반대하는 청원이 200여건이나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로부터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는 정진석 의원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한 오보였다. 정정 보도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애초 오보했던 기자를 포함한 기자들이 내보낸 종합기사에서는 이를 ‘해프닝’이라고 표현했다. 검증 없이 보도해서 국민 다수의 분노를 야기한 보도를 해프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까?

 

이 오보들의 공통점은 오보 이후 언론이 보인 무책임한 행태다. 오보는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오보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사실과 진실을 검증하는 내부 체계를 강화하거나, 기자의 책임을 묻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효과적인 방법은 오보나 오보 이후에 해당 언론이 보인 행태가 언론의 신뢰성과 연동되는 것이다. 오보의 횟수가 많거나 오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 독자들이 그 언론을 불신하고 또 멀리한다면 언론이 경각심을 가지고 오보의 가능성을 줄이려 애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언론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사를 포털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접하는 우리는 오보나 왜곡 기사를 보고도 그 기사를 쓴 기자나 언론사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기사가 맘에 안 들면 기사를 떠나고, 다시 제목에 낚이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언론이 생산하는 기사의 질이 언론의 평판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한 언론의 질이 향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언론사는 기사의 질을 높이는 데 자원을 쓰기보다는 유혹적인 제목 뽑기가 더 효율적이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 논란 속에 소위 포털 사이트 내에서 기사를 볼 것인가 아니면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로 이동할 것인가를 의미하는 인링크-아웃링크 논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에 소개한 것들이 어떤 언론의, 누구의 오보인지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런 오보들이 심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누가 쓴지 모르는 이상 그 언론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 깨어 있는 독자들이라도 언론사와 기자에 주목해 언론에 영향을 주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