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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도쿄 긴자에서 마주친 것

금요일 도쿄 긴자 사거리. 일본에 직장을 구한 지환씨와 도토루커피숍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1인 이용자가 많다. 창 너머로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임을 ‘봉축’하는 잘 디자인된 거대하고 세련된 광고버스 세 대가 지나간다. 국회 앞 아카사카 거리에서 만난 일본 민족주의를 확성기에 대고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차들과는 또 달랐다. 코너에 재미난 대열이 등장했다. 코스프레 복장을 한 이들이 운전을 하는 예닐곱 대의 지붕이 열린 슈퍼마리오 카트다. 신호에 걸린 그들은 마스크를 벗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단체사진을 찍는다. 신호가 바뀌자 대열을 갖춰 유유히 사라진다. 

 

아베 총리는 지난여름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나타났었다. 덕후의 나라다. 교통에 영향을 미쳐 논란은 있지만 불법은 아니란다. 그들이 서 있던 길가에는 300년 넘게 전통 문구를 파는 ‘도쿄 규쿄도’가 자리하고 있다. 연말을 맞아 손편지용 종이와 카드를 사는 노인부터 소녀들까지 가득하다. 향과 종이냄새가 그득하다. 지난해 서점 여행을 왔다 들러 오래된 문진을 하나 산 나는 그곳에서 전통도 보지만 현재의 생활을 느끼고 취향을 선택한다.

 

대각선 건너편엔 113년 된 12층 전체를 온전히 사용하는 현대화된 이토야 문구점이 서 있다. 오래되었지만 고쳐서 새롭다. 다루는 상품 숫자를 줄이고 물건을 판다에서 체험을 공유한다로 생각을 바꿨다. 바로 옆에는 고가 보석가게 티파니가 있고 티파니 옆 건물에는 도쿄 곳곳에 뿌리를 내린 덜 현대화된 커피체인점 르누아르가 있다. 어른들의 장소다.

 

건너편에는 닛산의 투명한 쇼룸이 환한 불빛에 신형차들을 드러내고 있다. 1층에는 특이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래 콘셉트카 느낌의 날렵하고 심플한 하얀 승용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요모조모로 뜯어보고 살펴보고 찍어보고 있었다. 대여섯의 엔지니어들이 모니터를 켜놓고 현장을 지원하고 있었고 한 사람이 원격 컨트롤러로 가와사키사의 거대한 기계 팔을 지휘하고 있었다. 3D 프린터와 인공지능 시대의 자동차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써놓았다. “상상을 조각하라, 미래를 창조하라.” 최고 번화가에서 그들은 미래의 기술을 드러낸다. 과정을 공유하고 미래를 체험하게 한다. 거리 북쪽에는 무인양품 매장이 있다. 여기에 무지북스가 있다. 마트에 서점이 있는 셈이다. 별도로 분리된 서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매장과 연결되어 있다. 책, 음식, 소재, 생활, 의복을 뜻하는 ‘사시스세소’라는 분류법으로 책이 선정된다. 매장의 철학과 연결된다. 모두가 똑같아지는 분류법을 가진 한국의 유통산업과 달리 자신의 분류법을 갖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식품과 식물이 손님을 맞는다. 뒤로는 11월부터 판매를 시작하는 조립식 작은 집이 있다. 재료비와 시공비를 합치면 300만엔이다. 

 

카페에선 고치현산 ‘황금의 마을’ 재료로 만든 생강차를 팔고 식품점에서 이를 구입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 옆에 샐러드 역사 책을 꽂는다. 레시피 책과 함께 믹서기, 소쿠리, 접시, 주전자, 누룽지 밥솥이 함께 있는 풍경이다. 식품 코너에서 후쿠시마산은 발견하지 못했다. 2층 카페로 올라서자 다양한 세대와 외국인들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공부를 하고 담소를 나눈다. 은퇴자로 보이는 정장을 입은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좌석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테이블 위 철로 된 표식도 특별했다. 농(農), 종(種), 소(笑), 강(江), 토(土) 이런 식이다. 옆으로 나오면 책장 한쪽은 식물과 관련된 책과 재료와 도구가 있고 한쪽은 화분이 칸칸이 들어가 화분책장이 된다.

 

식물과 함께 양면으로 구성된 뒤 책장 코너에서는 사진가의 시선이라는 전시가 진행된다. 사진가가 말 걸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순간의 책들이 꽂혀 있다. 옷 매장 머리 위로 천장에 붙은 책장이 날고 그 뒤로는 자전거가 붙어 있다. 인테리어 코너에는 마티스의 ‘재즈’ 그림 액자를 걸고 판다. 무지는 스스로 출판사가 되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정체성에 영향을 끼친 ‘야나기 무네요시’ 등 인물 시리즈 문고판을 출간했다. 무인양품은 간소하면서도 풍요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떤 것도 버릴 수 있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태도를 실천하고 있었다. 철학으로 장사를 한다.

 

긴자엔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되어 있었지만 자연스러웠다. 금요일 밤거리는 활력이 넘쳤다. 다음 날이 2020 도쿄 올림픽 1000일 전이다. 그러고 보니 긴자 거리에 표어나 구호는 보지 못했다. 도쿄도청과 매우 가까운 신주쿠역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펼침막 하나 보지 못했다. 도청에 무심하게 걸린 ‘2020 도쿄 올림픽’을 보긴 했다. 최소한 그들은 구호를 대문자로 써놓고 미래를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기자가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혁신은 헌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을 마구 가져가 붙인다. 아니면 새것에 구호를 붙여 헌것을 마구 몰아붙인다. 모든 것을 다 추구하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오래가는 혁신은 다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으로 미래는 현재에 스며들고 있었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