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독자·시청자를 ‘팬’으로 만들자

이제는 누구나 아는 대륙의 실수 샤오미는 작은 관심의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MIUI라는 그들의 첫 테스트 제품을 내놓았을 때 사용자는 100여명에 불과했다. 창업자들은 제품, 서비스, 브랜드, 소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사용자와 함께했고 사용자는 팬덤의 다른 표현인 참여감을 만끽했다. 샤오미의 팬클럽 미펀은 팬, 사용자, 마케터, 홍보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떠나는 날이 샤오미가 망하는 날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일요일 아침 동네 상가 팬시점 앞에서 여자아이가 칭얼거리고 있다. 아빠는 아이에게 열심히 일요일에는 늦게 연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엄마는 스마트폰을 꺼내 그 모습을 찍고 있다. 아이는 지금 당장 사서 내놓으라고 조르고 엄마는 이 와중에 자신의 미디어에 포스팅을 하는 눈치다. 함께 일하는 후배의 아들은 열 살이다. 엄마가 허락한 게임 시간이 되면 주니어 네이버에 들어가 누군가 허접하게 만들어 올린 자작 게임을 한다. 유튜브에 들어가 티셔츠 100개 입기같은 엽기 짱구 스타일의 막무가내 개인 방송을 보며 논다. 다른 후배의 딸은 열네 살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을 보고 캐릭터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특정 커뮤니티에 올리고 전국에 덕후 독자가 있다. 아이들은 강력한 소비자다. 또 다양한 특별한 콘텐츠의 팬이고 창작자이고 마케터이다.

 

올해 재미나게 본 출판시장 뉴스는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속기록을 전문(全文) 그대로 모아 담은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라는 책의 발간과 구매다. 출간 한 달여 만에 4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1341페이지짜리 재미없고 딱딱한 책을 기꺼이 구매한 이들은 좋아하고 가치있는 것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들 대부분은 책의 한 장면을 펼쳐 그 느낌을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개인의 시대다.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기준이다. “내가 뉴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뉴스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아침에 눈을 뜬 647분부터 잠이 드는 017분까지 계속해서 뉴스와 콘텐츠를 공급받는다. 미디어 채널과 정보는 도처에 널렸고 너무 많다. 구글링 한 번이면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은 언론사의 오랜 권위에 아랑곳없이 선별한 특별한 콘텐츠와 주관적 취향을 드러내며 개인과 연결되고 협력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힘이 세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들은 언론사의 본 방송, 배달신문, 홈페이지 첫 창을 지나온 지 오래다. 스마트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시민이 방송국이 되는 시간을 살며 문자에서 영상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에서 교류하고 포털에서 메시징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떤 언론의 브랜드가 오래되었으며 신뢰도가 높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나의 선택과 행동과 경험이 중요하다. 오랜 습관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오늘날 새로운 마케팅의 핵심은 훅 가고 빵 터지는지점을 찾아내 연결하는 것이 된다. 기업과 정부와 언론사가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발짓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배우 박보검 팬들은 그의 로케이션 촬영지를 엮어 보검로드콘텐츠를 만들고 대사를 이어붙여 동영상을 만든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를 좋아하는 만화 작가는 마블코믹스의 새 만화 시리즈에 그를 등장시키며 팬 픽션임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 밤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게임 <쇼미더머니5>는 케이블방송을 넘어 팬-신규 래퍼-기성 래퍼(프로듀서)를 매개로 메신저-미디어-메시지의 역할을 다층적으로 수행한다. TV에서 뽀로로를 성공시킨 아이크로닉스는 이제 테마파크를 통해 팬들의 경험으로 연결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웹으로 전 세계에 유통시키려 한다. 모바일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콘텐츠를 마음대로 골라 보는 시대의 전략이다.

 

우리 신문이” “우리 방송이라고 하지 말고 내가 팬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혁신이 좀 달라질 것이다. 새것을 만들기 전에 옛것부터 버려야 한다. 팬덤과 연결. 더 이상 대상화된 독자가 아니라 열혈 팬이다. “덕후는 지갑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심장이 흔들리면 구매하는 겁니다.” 다양성에 기반한 팬덤과 콘텐츠 큐레이션, 언론사가 혁신하려고 한다면 여기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새로운 콘텐츠 큐레이션을 실천하는 퍼블리의 ‘201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보고서는 러시아 콘텐츠 스타트업 북메이트(Bookmate)독자전략을 적고 있다. ‘독자를 창작자(creator)이자 마케터로 전환시키는 것, 즉 독자나 시청자를 대상화해 보여주려 하지 말고 갖고 싶은 공간, 취향, 습관을 느끼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콘텐츠 큐레이터들의 일이다. 플랫폼을 지향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