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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본질이 사라질 것에 대한 우려

국정농단, 헌정파괴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던 민심은 이제는 일치단결하여 즉각 탄핵과 처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정치권에 이를 결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끝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외려 정치권을 혼란시켜 임기를 연장하려는 대통령의 꼼수에 더욱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정치 세력들이 민심을 왜곡하려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촛불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언론이 나름 민심의 현장을 잘 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언론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많다. 촛불들은 광장에서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농단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면서 직접민주주의라는 매우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2~3년 전부터 감지할 수 있었던 국정농단의 실마리를 그 당시 언론이 제대로 풀어갔다면 지금 같은 국가적 피해와 주권자의 고생은 피할 수 있었다.

 

그나마 지금 대다수의 언론들이 각축하며 국정농단의 실태를 파헤치고 민심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언론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대통령이 벌인 국정농단의 일단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던 조선일보가 이문열 작가의 칼럼을 실은 게 대표적이다. 이씨는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이 글은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럼 4500만 중 몇 %가 나와야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때 당대의 최고 작가였다는 이씨가 민중이 밤을 새워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것을 ‘밤새 몰려다녔다’고 표현했다. 그의 필력이 약해서 그 정도밖에 표현 못했을까?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광장 민주주의를 폄하한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정치권과 종편의 일부 논객들은 노부부, 아이와 함께 나온 젊은 부부 그리고 애인, 친구의 손을 잡고 광장에 나온 자발적 집회 참가자들을 조직 동원이니, 대가를 받고 나온 것이니 하며 왜곡했다. 그리고 일부 언론들은 이런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이 말을 믿은 사람은 적었겠지만,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정답이었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의 어려움을 예상했던 보수 세력들이 대통령을 배제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나날이 커져가는 분노한 민심이 대통령을 넘어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기획·방조했던 세력까지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 본다. 대통령을 배제하면서까지 기대를 품었던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은 부정하며 정치권에 자신의 임기단축을 논의하라는 대통령의 꼼수로 ‘비박’은 물론 야권도 흔들렸다. 그런데 본질은 대통령 꼼수일까? 아니면 흔들린 정치권의 문제일까? 대통령의 흔들기에 넘어간 야권의 셈법을 ‘대선 주도권’을 겨눈 양보 없는 힘겨루기로 규정하며 사태를 전한 신문 ‘한국경제’의 기사는 주객전도다. 꼼수의 주체인 대통령은 사라지고 그 대상이 되어 버린 정치권을 주체로 문제를 진단했다.

 

이런 언론들을 보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광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대통령의 퇴진이지만 그 본질은 대통령의 국정농단, 헌정파괴를 기획했던 그리고 방조했던 세력들의 퇴진, 더 이상 그런 반민주적인 행태가 반복되지 않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건설이다. 그런데 그들이 벌인 대부분의 사안은 대통령의 퇴진 의제에 밀려 언론 의제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도 잠깐 논란이 됐을 뿐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 사드 배치는 전혀 재론하지 않고 있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금을 강제로 출연해 피해자연하는 재벌들이 챙긴 이익은 일부 언론에서 잠깐 언급되고 사라졌다. 가장 돈을 많이 냈다는 삼성이 국민연금이 손을 들어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의 수혜를 누렸다는 주장도 잠깐의 관심에 멈추고 말았다. 노동개악으로 피폐해진 노동자들의 삶, 자본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포기하며 도입하려는 성과평가제 등도 역시 관심 밖이다.

 

대통령의 퇴진은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비리를 계기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 사회 기득권 집단의 구조적 비리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들은 여전히 그 실마리에만 매여 있다. 그나마 그 실마리의 의미조차 왜곡하기 시작하는 기미가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통령의 퇴진이 결정되고 난 후 우리 언론들이 사회 개혁이라는 근본적인 의제 대신 대선이라는 ‘정치공학 의제’에만 매몰될까봐.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