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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도 가까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익숙한 멜로디로 따라 부르게 됩니다. 1992년 그룹 피노키오가 발표한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 가사인데 이 부분이 그 노래의 제목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많지만 진짜 제목은 ‘사랑과 우정 사이’입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썸’이라 하겠네요. 유튜브에 위의 가사 부분을 검색해보면 원곡과 리바이벌했던 가수들의 공연 영상들 사이에 엉뚱하게도 드라마 동영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곡의 가사를 교묘하게 패러디한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이라는 제목의 웹드라마입니다. 이미 시즌2까지 발표되어 1000만을 훌쩍 넘기는 조회수로 사랑받은 작품인데 밀레니얼 세대의 연애를 예쁘고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공감을 얻어내었습니다. 이외에도 ‘연애 플레이 리스트’나 ‘전지적 짝사랑 시점’, ‘썰스데이’ 같은 웹드라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TV 드라마의 제작은 한정된 채널의 제한과 한류의 성장이 조합되어 큰 자본이 투자되는 대단위 프로젝트로 진화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당 수십억원 혹은 수백억원의 큰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화되어 아무나 진입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의 저변확대는 TV 채널에 집중되었던 권력을 분산시키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LTE와 같은 초고속 데이터 서비스가 널리 쓰이며 모바일 기기의 화면 크기가 커지고 화질이 좋아지자 출퇴근 자투리 시간에도 무엇인가를 보는 일이 늘어나 스낵컬처라 불리는 웹드라마가 사람들의 눈을 끄는 콘텐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웹드라마의 신선함은 잘 알지 못하는 배우, 감각적인 앵글과 색감, 구성과 대사가 중심인 설정으로 완성되어집니다. 주인공들 또한 매력적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만큼 유명하진 않기에 사진앱의 필터가 씌워진 듯 예쁜 클로즈업으로 마치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필름으로 보는 것과 같은 환상을 갖게 합니다. 다시 말해 ‘나’도 그 자리에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죠.

 

연애는 로망이지만 결혼은 환상인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압구정’이나 ‘강남’은 너무나 먼 곳이고 더 현실적인 ‘사당’이나 ‘의정부’가 배경이 되어 사랑을 꿈꾸거나 혹은 거꾸로 친구가 사랑이 된 후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파스텔톤의 로맨스물로 만들어냅니다. 백마 탄 왕자와 같은 재벌 3세가 어려운 환경 출신의 여자 주인공을 우연히 마주친 후 여자 주인공이 쌀쌀맞게 반응하자 “나에게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며 당황스러운 사랑을 느끼는 클리셰는 더 이상 없습니다. 불우한 결혼생활에 지친 유부녀에게 부유한 미혼남이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며 자신에게 오라 말하는 일일드라마의 판타지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중간 상표가 또렷이 보이는 화장품으로 화장을 고치는 장면이 나오며 이 콘텐츠의 제작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눈치챌 수 있지만, 공짜로 보는 마당에 이 정도의 광고라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봐줘야 한다 인정하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제작비도 대부분 신인배우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만드는 기회로 들어오는지라 TV드라마의 유명배우 개런티와 비교하면 의미 없을 만큼 작습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겨우 수백만원 남짓을 모으는 드라마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제나 대사에 더 공을 들여야 합니다. 특수효과나 스펙터클한 장면을 기대하기는 예산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사극이나 세계를 무대로 한 첩보물 같은 거대한 기획이 어려워지면 옆에 있는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공감을 일깨우는 것만이 가능할 터이고, 결국 일상의 치밀한 관찰과 재발견이 소거법에 의해 현실적인 대안으로 남게 됩니다.

 

예전 앉은뱅이 밥상에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TV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으시고 식구가 많으면 한쪽 다리를 세워가며 함께 저녁밥을 먹던 추억은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 함께 시청하던 드라마는 가족이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안고 있다 보니 대가족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어려움에도 결국 사이좋게 화해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수가 가장 많은 시대로 접어들며 ‘가족’에서 ‘나’로 중심이 이동합니다. 일을 하러 가는 지하철이나 늦은 야근을 마치고 지친 버스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보는 우리 직장의 옆자리에 있는 김 대리가 공감할 이야기가 웹드라마에서 펼쳐집니다. 직장에서 윗사람에게 한소리 듣고 점심 뭐 먹을지 메신저로 소근거리고 오후 4시 커피 한잔 몰래 함께하러 가는 일상 속 말랑말랑한 한때가 소복소복 그려집니다. 저 멀리 신분상승을 위한 일확천금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연애를 꿈꾸는 소시민의 삶이 청춘이라는 단어처럼 푸르게 표현되는 것이죠.

 

오늘도 김 대리와 이 사원은 사당과 의정부 사이 어느 곳인가 분주히 움직이는 지하철 속에서 채색된 자신의 모습 같은 드라마를 보며, 그 안의 주인공이 되는 꿈과 함께 직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