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하셨습니까? 나이든 분들에겐 익숙한 한국식 인사로 그 표현은 중국어로도 같습니다. 모두 어지간히 배고팠던 트라우마가 있는 조상을 둔 듯합니다. 시간을 뜻하는 말 또한 밥 한끼 먹을 시간인 ‘한 식경(食頃)’과 차 한잔 마실 시간인 ‘일다경(一茶頃)’처럼 먹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수년간 성황리에 계속되고 있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는 매 편마다 마지막 꼭지로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가 본편의 맛집을 찾습니다. 그가 낸 책 &lt;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에서 저자는 카레라이스에서 낫또를 거쳐 단팥빵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음식들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애주가이자 미식가인 자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가 한국의 현대사에서 주목받아 늘 숫자와 띠로 동시에 불리는 ‘58년 개띠’인 것은 아셨는지요? 배고팠던 그들이 기억하는 보릿고개라는 말은 이제 사어가 되어 갑니다. 쌀이 떨어지고 보리가 패기 전, 말로만 듣던 초근목피가 구황이 되었던 시기의 기억은 지금 60대 이상에겐 직접 목도한 동시대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배불리 먹어도 좀처럼 살이 찌지 않는 우리집 고양이를 동경하며 여전히 죄책감 있는 즐거움의 한끼를 탐하는 세상이 오고 말았습니다.

 

옥스퍼드의 이언 골딘 교수는 책 <발견의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500년이 흐르도록 빈곤층은 수입의 절반에서 80%에 이르는 돈을 생존을 위한 식료품을 사는 데 썼다 합니다. 최근 한국은 3만달러의 개인 소득을 성취했는데도 엥겔지수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생활 속 빈곤함이 덜어지더라도 ‘다 먹고사는 문제’라는 말처럼 한끼를 “제대로 잘 먹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우 김태리가 출연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리바이벌한 동명의 영화에서는 주인공 역의 배우 김태리가 도시의 상처를 딛고 다시 싱그러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계절의 씩씩한 식사를 통해 가만 가만 그려 나갑니다. 혼자 먹는다 해서 열무와 고추장을 양푼에 넣고 쓱쓱 비벼내는 비빔밥 정도가 아니라, 취나물을 넣은 파스타에서 발음도 어려운 프랑스 디저트 크림 브륄레처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가 녹록지 않은 음식들까지 망라됩니다. 직접 가꾼 유기농 재료에서 요리법, 그리고 가지런히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플레이팅으로 마무리되는 완벽하게 ‘제대로 된 한 끼니’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혼자 시골집에 살고 있지만 냉장고 속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있던 밑반찬을 그대로 상에 올리는 것이 아닌 ‘제대로’ 먹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음식을 향한 미디어의 태도 또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의 대가족이 등장하는 식사 장면에는 좀처럼 음식의 준비 과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갖가지 반찬이 가득 차려진 식탁 위 메뉴를 별달리 탐하지 않는 드라마의 배우들은 먹는 행위보다 대화에 열중합니다. 이때의 밥상은 그저 연극 무대 위 소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쉬지 않고 먹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투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맛있게 먹기 위해 24시간 위를 비우는 과정을 추적하는 기획까지도 방영되니 먹는다는 행위가 소재에서 주제로 승격된 듯합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식사가 구도의 길을 위한 은유로 사용되기까지 합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준비가 덜 된 자영업 예비 후보군들은 이미 성공한 선배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습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 ‘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 수도자의 자세를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TV 속에는 먹거리를 구하는 남자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케이블 시청률 10위 내에 포진된 두 개의 프로그램 <도시어부>와 <나는 자연인이다>는 모두 남자가 밥 해먹는 일이 하이라이트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갑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팔뚝만 한 물고기를 잡아 올린 후, 쉬는 시간 문어를 넣은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에서 원시시대에 먹거리를 구해오기 위해 멀리 떠났던 남성의 생존 능력이 오버랩됩니다. 여전히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무언의 주장은 인공지능의 도래와 혁명적 산업의 진보라는, 인류에게는 희망을 주며 개인에게는 무력감을 안겨주는 거대한 변화에서 스스로에게 최후의 대안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나만의 알파룸을 꿈꾸게 합니다.

 

어렸을 적 부신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잠투세를 부리며 받던 당연하던 밥상이 이제 여간해선 받기 어려운 상이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못된 등장인물이 성질을 부리며 엎던 밥상 또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보다 혼자 먹으면서도 먹기 전 “잘 먹겠습니다”와 다 먹은 후 “잘 먹었습니다”를 잊지 않고 말하는 <고독한 미식가> 속 꺽다리 아저씨의 표현이, 그리고 “일용한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는” 식전 기도가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저절로 나오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밥상은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재즈를 들으며 파스타를 삶는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처럼 혼자서 삶을 묵묵히 꾸려가야 하는 각자가 준비하는 21세기가 체감되고 있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