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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매일 배달되는 신문이 열려 있는 대문 사이에 들어오면, 먼저 가져와 석유 냄새를 맡으며 황홀해하던 느낌이 선명합니다. 막 배달된 신문의 냄새는 조용한 도서관의 나프탈렌 냄새와 하얀 구름 같은 연기를 뿌려주던 소독차 냄새와 함께 기억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냄새들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여름철 제대로 차려입지 않은 개구쟁이들의 까까머리 모습과 함께 예전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그 시절 읽을거리가 흔치 않았던 상황에서도 신문은 반갑지만 그리 살갑지는 않은 매체였습니다. 한자가 병기된 어려운 단어와 어른들의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기에 어린 친구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내용은 네 컷으로 그려진 시사만화와 그날 저녁 TV에서 방영될 프로그램들의 편성표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그 어려운 내용을 척척 읽어내시고 때론 의미있는 내용은 오려 스크랩을 하시곤 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으로 배열된 순서를 보면 사회가 그 힘의 기준으로 줄을 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면을 가득 채운 증권 정보에는 상장사의 주가 정보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고, 주식시장이 쉬는 날에는 주요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 시세가 실려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정보 중 극히 일부분이 자연사 박물관 속 박제된 호랑이처럼 지면 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신문의 기원이라는 단어를 검색엔진에 넣으면 로마시대 원로원의 의사록에서 시작되었다는 출발점에서부터 조선시대 필사로 이뤄지던 관보 성격의 조보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주르륵 쏟아집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던 정책과 그 향방을 점쳐 볼 수 있는 인사에 대한 기록들, 다시 말해 ‘중앙과 연결된 고급 정보’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죠.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뉴스라 어원 역시 “새롭게” 듣는 소식이라는 것이라는데, 이제 “새롭다”라는 주기가 계속 짧아지고 있습니다. 매분 생성되는 뉴스들이 종이 위에 조밀하게 편집된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기사 단위로 인터넷에 쉴 새 없이 올라옵니다. 언어와 지역의 한계 또한 빛과 같은 통신망과 자동 번역 시스템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불과 200여년 전 영국과 프랑스 사이 전쟁의 결과를 다른 이들보다 미리 알아내 영국의 국채에 투자하여 무섭도록 큰 부를 이룬 가문의 이야기는 뉴스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회자됩니다. 빠른 정보의 습득이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어 마치 상대의 패를 보고 있는 카드 플레이어처럼 이익을 얻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같은 평등한 정보의 공급이 이뤄지는 시대에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소식 자체가 의미 있다 해도 이를 전달하는 매체가 의미 있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 하나의 뉴스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기껏 잘 정리하여 배열한 종이 자체는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부위별로 포장된 정육의 부위와 같이 부분은 효용이 있지만 모아 놓은 전체는 쓸모가 없어진 것이지요. 여기에 기자들에게 출입처라 불리는 기관과 단체는 이제 자신의 주장과 팩트들을 보도자료라는 형식으로 온라인상에 직접 제공합니다. 엠바고라는 보도의 허락 시점이 있더라도 종이에 찍혀져 나오는 시간과 배달의 물리적 한계를 본다면 그보다 훨씬 빠르게 모두의 스마트폰에 도달해 버리고, 이는 본편의 스포일러가 되고 맙니다. 그 본편마저 동일한 소스로부터 출발한 미세 편집본 수준이라면 포털의 클러스터링 엔진의 도움 없이는 부득불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는 수고를 독자에게 요구합니다. ‘지구촌’이라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단어를 제시한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은 이처럼 전자 정보 시대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정보 과잉 상태에서 사는 것이 될 것이라 1967년에 이미 예견했습니다. 진정한 내부의 고급 정보는 ‘지라시’라는 험한 이름으로 루머와 함께 카톡으로 몰래 전달되는 시대, 소식이 보편화되어 의미가 없다면 해석이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큰 나라들 사이에 무역분쟁이 시작된다는 소식은 이제 새롭지도 않으며 그것보다 그 결과로 내가 산 주식의 가격이 오를 것인지, 우리 아이는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이 구만리 같은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다른 나라의 돈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하는데 그렇다면 다시는 20년 전같이 십시일반 금을 모아 내던 상황은 재현될 리 없는 것인지, 그때 현금을 가진 사람들이 싸게 사서 후일 큰 재산을 이루었던 부동산의 값은 앞으로 어찌 될지가 더욱 궁금합니다. 정보의 평준화라는 환경의 변화는 매체별 해석과 통찰의 날을 더 세우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자연선택의 엄중함을 선언합니다.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주고 드라마는 10시간 이상의 판타지를 내게 안겨줍니다. 이제 신문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신문에 실리게 될 칼럼을 쓰며 그렇다면 이 글은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가당착적 고민에 빠진 1인입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