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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언론의 경쟁상대는 문 대통령이라는 미디어다

U-20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은 누가 경쟁자인지를 알았다. 5월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그는 “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최순실 사건으로 가려졌고,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떠서 대회가 계속 가려지고 있다”고 했다. 김어준씨도 시청자도 웃었다. 그러나 대회 관계자들은 웃지 못할 일이다. 83% 지지율의 대통령과 경쟁해야 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국제 축구대회는 희미했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의 경쟁상대는 대통령이다. 문재인이라는 미디어와 플랫폼은 기성 언론과 다르다. 과거종속형인 화석과 현재진행형인 생물의 차이다. 종이신문과 정규방송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통령 자체가 차별화된 브랜드이며 실시간 미디어이고 대화형 캠페인이다. 신봉자와 영향력자로 구성된 커뮤니티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주주서한에서 21년째 반복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첫날(DAY-1)’ 전략이 떠올랐다. ‘고객중심주의’와 ‘장기적 관점’을 보여주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아마존 모두에게 오늘은 ‘Day1’일 뿐”이라는. 대통령의 다른 태도와 국정운영의 새로운 포맷을 나는 매일 새로워지고 과정이 결과가 되는 ‘첫날’이라 부르기로 했다.

 

언론이 “내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 하며 독자를 따라오라고 하는 동안 첫날은 ‘우리’와 함께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베를린 교포가 원하는 지점에 메르켈 총리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식이다. 첫날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않는다. 5·18 희생자의 자녀를 따라가 따뜻하게 안아준다. 청와대 페이스북은 한·미 정상회담의 B급 사진을 대거 투척해버린다. 누구나 볼 수 있고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이다. 첫날이 이러한 존재가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기성 언론과 달리 2017년의 새로운 언어, 기술, 문화를 배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첫날은 담백하고 솔직하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위엄을 보여주는 가수 이효리, 김영하·유시민·유희열·정재승·황교익이 펼치는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는 <알쓸신잡>, 나홀로 여행을 원하는 여성들의 소망을 담은 <싱글와이프>와 공통의 무대에 오른다. 전통 뉴스권 밖의 제국 tvN의 모토는 ‘의미’와 ‘재미’다. 대통령은 국정의 경계를 확장한다.

 

첫날은 기업들이 요즘 지향하는 브랜드 저널리즘을 보여준다. 익스트림스포츠 미디어 채널인 레드불TV, 뉴스룸으로 무장한 코카콜라의 정부 버전이다. 윤영찬 홍보수석이 대언론 서비스를 총괄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미디어의 편집장이 되는 것이다.

 

4년 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이 났을 때 범인의 검거를 알린 것은 보스턴글로브나 뉴욕타임스가 아니었다. 보스턴 경찰국 트위터가 “잡았다”를 전 세계에 전송했다. 언론이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는 전개다. ‘첫날’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된다. ‘뭐든 연결되어 있고 기계를 포함해 모든 것은 서로 소통한다’는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유영한다. 청와대 홈페이지라는 형태가 준비가 되어 있고 안되어 있고는 중요하지 않다. “홈페이지 첫 창은 죽었다”는 뉴욕타임스의 선언처럼 새로운 스타트업 미디어들은 아예 다른 소셜미디어 플랫폼 안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전에는 서울에 남아 베를린에서 보내는 영상 카메라 화면을 변환해 정상회담 끝나고서야 겨우 페이스북 페이지를 장식하던 담당자는 현지로 날아가 현장 그림을 운 좋게 찍어 거친 화면을 실시간 편집으로 제공한다. 사용자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기대와 필요에 반응하는 리얼타임 데이터다.

 

첫날은 말과 글을 형식과 의전이 아니라 스토리로 이해한다. 대통령의 말과 글이 존엄의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군의 국회의원들이 장관 청문회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청문당하는, ‘구린 정치’는 모르는 세계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회의에 참석하며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하며 입장한다. 김정숙 여사는 작곡가 윤이상을 이념이 아니라 고향 통영의 동백나무를 통해 베를린으로 옮겨간다. 이거 실화다. 현실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었다. 그리고 국민을 대상화된 소극적 관람자가 아니라 적극적 마케터 혹은 영향력자로 전환시켰다. 팬은 국정운영의 파트너가 되고 FC바르셀로나처럼 특별한 클럽에 가입되어 느슨하지만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대통령의 생각은 캐릭터-스토리-메시지로 이어진다. 속도와 패턴, 서사 모두가 새롭다. 예전에는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점과 점이 연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와 경쟁한다.

 

국정이 너무 미담 중심이고 정부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아이돌 팬덤처럼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전 정부와는 접근이 다르다. 시대와 함께 쿨하고 국민과 함께 핫하다. 측근이라는 인의 장막과 편견이라는 철의 장막도 걷혀 있고 대체로 투명해 보인다. 대통령은 거대하고 높은 본관 홀로 사무실이 아니라 비서동 3층으로 출근하고 참모들과 수시로 상의하고 저녁엔 관저로 퇴근한다. 매우 취약해 보였던 시작의 시간은 2017년을 사는 동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상식에 가깝고 기대로 채워져 있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