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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우리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그의 노래가 그립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소리로 먹먹하게 심장을 적시는 가객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있을까. 정태춘의 슬픈 절창은 창끝처럼 날카롭게 우리의 무딘 가슴을 찌른다. “우리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새삼 절창이 떠오른 까닭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인 젊은이들 때문은 아니다. ‘헬조선’ 때문도 아니다. 나라 경제가 기울고 국민 대다수가 시름에 잠길 때 고위공직자들은 지난해 평균 5500만원이나 재산을 불렸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이 검사장의 ‘120억 주식 대박’에 초점을 맞추면서 재산증식의 근본적 문제들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공직자들이 불린 재산을 보며 가장 눈앞에 삼삼했던 이는 요즘 차별받아온 일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운전기사’다. 대구역에서 강연장으로 가던 길에 정치인 박근혜를 왜 좋아하는가를 묻자 무람없이 답했다. “서민적이지 않습니까.” 곧이어 떠오른 얼굴은 경북의 ‘전통적 도시’에서 만난 60대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대통령에게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그이는 말했다. “그게 박근혜 잘못인가요. 세계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지.”

정말이지 궁금하다. 그 착한 이들은 박근혜 재산이 지난해 3억5000만원 늘어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통령 재직 3년 동안 재산이 9억원 불어났다.

딴은 대통령만은 아니다. 정부 공직자 못지않게 1억원 넘게 재산이 늘어난 국회의원이 91명에 이른다. 왜 저들이 국회의원을 하려고 “개 같은 ×”에게 한 표를 부탁하는 전화질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오해 없도록 밝혀두거니와 “개 같은 ×”은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건 뒤 뱉은 말이다.

<총선> '김무성 서울 강동지역 유세_연합뉴스

그럼에도 대통령의 불어난 재산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은 또렷하다. 대통령이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뿐더러, 노상 ‘명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집권 내내 ‘기득권 세력’으로 훌닦아왔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박근혜는 노동조합을 ‘마녀’로 사냥했고, 3대 방송과 조중동 신방복합체는 용춤 추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사냥개 언론’이 살천스레 몰아세운 이른바 ‘노동 귀족’ 가운데 대체 누가 지난 3년 동안 10억원 남짓 재산을 불렸는가.

자신은 해마다 수억원씩 재산을 불리면서 노동조합을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어 억압하고 탄압하는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배짱’ 또는 ‘위선’이 아니다. 정치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양심의 문제 아닐까. 혹 과한 비판이라 나무랄 이들에게 명토 박아둔다. 만일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을 10억원 가까이 불릴 때 나라 경제도 그만큼 불렸다면 나는 기꺼이 박근혜 ‘찬가’라도 부를 수 있다. 민생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가. 딱히 ‘신뢰의 정치인’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배신한 사실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해 실질성장률은 2.6%로 한 해 전 3.3%보다 더 낮다.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을 천문학적으로 불려나가던 바로 그 시기에 국민의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정부 살림도 빚잔치다.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가 2013년 50%를 넘은 데 이어 2015년 55.7%까지 불었다.

아직도 죄다 ‘세계 경제 탓’이라고 대통령을 두남둘 참 착한 이들을 위해 쓴다. 박근혜 집권 뒤 한국은 세계 경제성장률을 내내 밑돌았다. 이명박 집권 시기까지 넣으면 5년 연속이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라고 언구럭 부리지만 김대중-노무현 시기(2000~2007) 성장률은 이명박-박근혜 8년의 3.1%보다 높아 4.9%였다. 실업률도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 두루 2010년 이후 낮아지고 있다. 박근혜가 집권한 2013년부터 실업률이 치솟아온 한국과 사뭇 대조적이다.

청와대가 사실상 장악한 3대 방송과 조중동 신방복합체는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 본령을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다. 지난 3년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들은 재산을 크게 불린 반면에 국민 대다수와 국가재정은 빚만 커진 사실을 알고 있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총선을 사흘 앞둔 오늘까지 야당과 ‘노동조합 기득권’ 탓만 한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진실을 능멸하는 권력과 미디어의 세련된 공작은 악머구리처럼 지금 이 순간도 들끓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통령은 서민을 위해 애쓰는데 세계 경제가 어렵고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며 박근혜를 감싸던 얼굴이 씁쓸하게 맴돈다. 그이의 눈빛은 저들이 휘두른 폭력에 넉 달 넘도록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처럼 순박했다. 그 눈시울로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살이 속절없이 서글프다.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