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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정상화, 모든 언론의 과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정권에 부역한 사장을 해임하고 방송장악의 희생자였던 최승호를 새 사장으로 뽑는 등 공영방송 회복 절차에 들어갔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과거 낙하산 사장 반대로 파업하고, 낙하산 사장이 물러나거나 적당한 유화조치로 타협하면 끝나던 시절과 지금이 같을 수 없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각성한 주권자이자 시청자들이 사장을 교체했다고 즉각 박수쳐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만나서 좋은 친구’일지 ‘다시 봐도 그저 그런 친구’일지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애타게 외쳤던 구성원들이 보도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달라진 내용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정치권력이나 소수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또 다른 (언론)권력인 MBC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소외된 다수의 현실을 대변하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최승호 신임 MBC 사장(손 든 이)이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과 함께 2017년 12월 8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72일간의 파업으로 물꼬를 텄던 MBC와 달리 KBS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양대 공영방송은 지난 정권 시기 부당한 권력에 장악돼,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흉기가 됐었다. 그렇더라도 공영방송은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제 시민의 자산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 첫 번째 길이 권력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을 정리하고 시민을 대변하는 진정한 언론인들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양대 공영방송에서는 그런 일련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시점 그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왜곡된 과거를 온존시키겠다는 뜻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부당함을 경험했던 언론인들이 그 작업을 잘 진행하리라 기대한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1987년이다. 1979년 유신 정권이 붕괴하면서 우리 사회는 잠깐이나마 민주화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곧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민주세력을 군홧발로 짓밟았고, 언론인 강제 해직, 언론통폐합으로 언론을 탄압했다.

 

그리고 신군부는 5공 정권 내내 소위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언론은 이에 전비어천가 즉 ‘땡전뉴스’로 화답했다. 민주시민언론연합(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의 월간지 ‘말’이 보도지침을 폭로하고 1987년 5공 정권이 막을 내렸다. 그즈음 정권 내내 억눌렸던 언론인들이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노동조합과 직능협회들을 결성했다. 소위 언론민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과거사 청산을 비롯한 언론민주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소위 무한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언론사들 사이의 무리한 경쟁이 시작됐다. 분공장을 설치하고, 증면을 하고, 무료 구독이나 경품 제공으로 ‘제 살 깎기’에 나섰다. 그리고 무리한 경쟁에 나섰던 언론은 IMF 체제라는 철퇴를 맞았다. 대다수 언론인들은 경영의 어려움을 앞세운 경영진과 자사 이기주의 논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언론이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포기한 것이다. 정치권력보다 더 무서운 자본권력의 통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자본권력에 우호적인 정치권력의 통제마저 귀환했다. 공영방송의 장악과 왜곡보도는 새삼스럽게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럼 공영방송 말고 다른 언론들은 언론의 정도를 지켰을까?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의심 미국소 수입 조건 협상 논란부터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 당시 대선 댓글 사건, 세월호 참사 보도, 문고리 권력과 최순실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 보도 역시 공영방송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신이나 5공 시절처럼 이비어천가, 박비어천가가 반복됐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통제 아래 언론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권력이 바뀌어 정치적 통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의 통제도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력의 개입은 직접적이고 두드러져 보인다. 그래서 저항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드는 자본의 통제는 인식하기도 어렵고 저항하기도 어렵다.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이 기레기를 비판하며 언론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의 통제를 극복하고 언론의 정도를 되찾기 위해 나설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더 이상 신뢰를 잃어서는 언론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본의 통제 즉 이윤추구라는 기업 가치의 굴레에서 벗어나 언론 본연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다수의 수용자는 기사를 언론이 아닌 포털이나 SNS를 통해서 접한다. 기사는 언론이 생산하지만 언론의 존재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기사와 언론의 기사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클릭장사를 강요하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라는 요구를 극복해야 한다. 진정한 저널리즘이 뭔지 증명해야 한다. 공영방송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정상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 무술년 새해에는 곳곳에서 1987년 이후 보았던 언론민주화의 함성을 다시 듣고 싶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