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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앞이다. 뜨겁고 차가운 바람이 분다. 가볍고 무거운 소문이 돈다. 선하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은 두 개의 나라다. 1859년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쓴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비연속적이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옛 표준도 없고 새로운 표준도 없는 세계다.

 

러시아는 푸틴 제국의 방식으로 고집스러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굉장한 디지털 창업과 거대한 검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늙은 영국’을 부정하던 영국은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새 총리 메이는 이를 글로벌 영국이라 정의한다. 4% 지지율의 대통령을 대신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극우정당 민족전선의 르펜이 많이 앞서가고 있다. 다른 유럽을 주창한다. 유럽연합(EU)의 방파제 메르켈은 4선 도전이 위험하다. 미국은 공공영역에서 한 번도 일하지 않은 다른 문법의 트럼프 대통령을 뽑아놓고 격렬한 대립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에게는 ‘규칙 위반자, 게임 체인저’라는 설명이 붙는다.

 

CNN 기자가 묻는다. “우리 뉴스가 가짜 뉴스냐.” 트럼프 대통령의 답은 “정말 가짜(very fake)”다. 새 노동부 장관을 소개하기 위해 기자실에 나온 그는 77분 동안 언론에 저주를 퍼부었다. 백악관은 이후 비판적인 언론을 내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점도 있다. 종합편성채널들이 세월호와 탄핵을 계기로 급속 성장했듯이, 트럼프를 진지하게 찬성하든지 격렬하게 반대하든지 미국 케이블 채널들의 시청률이 폭등하거나 크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뉴스와 평론 프로그램이 강화되고 있다. 뉴스의 미래라기보다 적대적 공생의 아이러니다. 이것이 “모든 뉴스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들고 있는 트럼프 시대의 한 단면이며 언론과 미디어가 매우 심각한 경각심을 갖고 유혹에 빠지지 않는 대처를 해야 하는 이유다.

 

해방둥이로 소설가의 아들로 태어나 경기고·서울법대를 나와 평생 엘리트로 살아온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김평우는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변론에서 “탄핵심판을 국민이 결정하도록 맡기면 서울 아스팔트길은 피와 눈물로 다 덮여버린다. 시가전이 생기고 우리는 불행히도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영국 크롬웰 혁명에서 100만명 이상의 시민이 죽었다”고 했다.

 

가짜 뉴스는 트럼프 소유가 아니다. 아무나 주저 없이 소문을 생산한다. 누구도 고스란히 뉴스를 믿지 않는다. 소년부터 노인까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잠이 들기 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기억한다. 자신이 속한 세대, 계층, 종교가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필요가 진실을 조직한다.

 

모두가 ‘진짜 가짜 뉴스’의 생산자이며 소비자가 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독일의 전 총리 슈미트는 <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에서 나치 시대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닌 신념을 갖고 있는 척해야 했다. 온 국민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진보 진영도 매체도 물론 그렇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첫째, 경제적 조건의 변화다. 나눌 것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고 분노의 출구가 없어졌다. 세대는 가장 격렬한 대립의 단위가 된다. 둘째, 통제받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인터넷은 무정부 상태를 수반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현이다”라고 말했다. 셋째, 모든 것에 대한 개입이다. 정치, 규제기관, 미디어의 권위를 넘어서는 1인 권력이 사사건건 개입한다. 공포와 불안이 그들을 움직인다. 넷째, 연결 초과사회는 맥락을 바꾼다. ‘엄청난 선(善)과 무시무시한 악(惡)’이라는 현실 이상의 세계다. 분열된 사회가 정부가 방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반응할 때 연결은 파국적 권력이 된다.

뉴스와 사실, 진실은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로이터 편집장인 스티브 애들러는 1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커버하는 방식에 대해 밝혔다.

 

“우리는 뭔가를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합니다. 소문이 들려오면 실제 상황인 것을 확신할 때만 추적하고 보고합니다. 우리는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장 빠르지만 사실과 다른 ‘영원한 특종’, 오보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규칙서에 나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적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165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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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