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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깊은 울림을 낸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사 일부다. 지금부터의 민주주의는 다양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더 큰 변화의 주문이라고 읽힌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압축성장과 개발연대를 대표하는 철학과 습관의 종언을 의미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박정희 반대 패러다임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동반한다. 나와 너는 다르고 같아질 수 없다는 다양한 삶에 대한 존중과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탄핵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모두가 하나의 방향과 경험만을 공유하는 획일과 독선에 대한 위대한 해체 과정이라 해야 맞다. 태극기를 든 평범한 노인들의 표정이 비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시대가 부정당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그들을 거리의 투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탄핵 대상이 없는가 자문하게 된다. 낡고 병든 것을 향해 쏘아진 화살은 동일한 잣대와 기준을 갖고 내부를 향하고 있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탄핵은 과거를 부정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어떤가.

 

삼성 미래전략실이 해체되었다. 언론사 창간기념일을 전후해 진행되던 막대한 협찬 거래는 중단될 것으로 기대했다. 아니었다. 새로운 거래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언론사는 기존의 총액을 들이대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 믿는다.

 

영화 ‘컨텍트’의 한 장면

 

삼성 이외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더 집요한 요청을 받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동안 언론은 광고주에 대해 좋은 시절에는 좋은 기사로 좋은 관계를 설정해 왔다. 그러다 사건이 생기거나 만들어지면 사실 기사로 조지고 의견 기사로 방어하거나, 정치·사회면에서 공격하고 경제·산업면에서 살리기도 했다. 심지어 모든 면에서 비판하고 이를 기반으로 편집국과 광고국이 철판 깔고 영업을 하기도 했다. 태풍이 지나가면 기업의 위기를 알리는 기획기사가 등장하고 점잖은 사설로 국면을 조정해갔다. 이러한 관계방정식은 탄핵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진보·보수언론 할 것 없이 과거 방식과 수익모델은 임계점에 달했고 새로운 패턴과 지향을 갖는 변화의 특이점이 왔는데도 답이 없으니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물론 이번에도 김영란법 피해 지나가듯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제 권력을 옹호하던 기자들은 이제 세탁과정도 없이 다음 날 청와대로 가고 캠프로 이동했다. 언론사주의 가족 승계 또는 구관 돌려막기 인사는 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탄핵에서 배웠다. 은폐될수록 그만큼 탄핵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박근혜 정권이 방증하지 않았던가.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던 금요일 나는 ‘호외’를 기다렸다.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된 시간은 오후 늦게라 석간인 문화일보와 아시아경제가 호외를 냈었다. 경향신문만이 유일하게 다음 날 신문을 당겨 오후에 특별판을 뿌렸다. 토요일 아침 판을 누가 얼마나 보았을까. 도쿄에는 예상대로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해 여러 호외가 뿌려졌다. 역사의 순간을 입체적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인터넷 기사를 공유하는 것보다 종이로 인쇄된 신문을 보관하고 싶었던 사람은 또 없었을까. 신문은 넓어지지 않았고 독자의 시공간이 아니라 모바일과 인터넷에 갇혔다.

 

반면에 이런 포착도 있었다. 탄핵 당일 전 세계를 움직인 엄청난 뉴스가 터졌다. 부산대 로버트 켈리 교수는 영국 B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방송 화면에 켈리 교수의 딸이 갑자기 서재 문을 열고 춤을 추면서 나타났고, 보행기에 탄 아기가 따라 들어왔다. 곧이어 켈리 교수의 아내가 황급히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해외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즐겁고 재미난, 때로는 편견을 논하는 연결중계차를 탔다. 41초 편집 동영상은 1억뷰를 넘어섰고 네 살 난 딸 메리언은 ‘새로운 인터넷의 영웅’이 되었다. 세계 언론은 한국 언론이 가십성으로 뒤처져 따라가고 있는 동안 다양하고 유연한 태도로 콘텐츠를 선도하고 영향력을 확보했다. 출입처와 광고주에 갇히고 심지어 모바일에 종속된 한국 언론이 지금 연구해야 할 대상은 규격화된 정보가 우연의 중계차를 타고 움직인 ‘켈리 임팩트’다. 아주 작고 재미난 사건과 연결된 전 세계의 콘텐츠 폭발, 전파 구조와 강력한 영향력. 새로운 뉴스 생산-소비-유통의 접점과 맥락에 대해.

 

영화 <컨텍트>는 낯선 타자와의 소통과 공감을 다룬 SF 영화다. 외계인과 대화의 채널을 여는 언어학자 루이스가 말한다. “게임으로 소통하면 그들은 적, 승리, 패배란 개념만 배우게 될 거예요. 우리가 그들에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겠죠.” 적대적 공생의 시대, 주고받는 카르텔을 마감해야 한다. 다양성과 호기심, 진취적 의지를 갖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독창적’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탄핵의 부메랑은 언론을 향할 것이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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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