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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북한세습논쟁 '문제제기 좋았다' vs '소모적인 논쟁'


18일 열린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이었나’ 토론회는 경향신문 10월1일자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제하의 사설을 저널리즘 비평 대상으로 놓고 사설의 의미와 반향을 분석한 자리였다. 토론회에선 진보진영 내 북한 논의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필요하고 적절한 의제 설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불필요한 논쟁을 제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새언론포럼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토론회 취지에 대해 “북한 세습 논란을 통해 제시된 프레임은 무엇이며 쟁점·의견은 무엇이었는지를 객관화하고, 저널리즘 실천의 사회적 의미 공유를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은 발제문에서 “경향신문 사설은 이야기하려는 목적 의식과 대상, 주장이 분명했다”며 “사설의 형식적 완결성 차원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파성과 관점이 뚜렷한 한 편의 잘 써진 사설”이라며 “기왕에 ‘종북’ 논란이 말끔하게 일단락 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 내부의 의제를 재설정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경향신문 사설 하나를 놓고 이같은 저널리즘의 관습과 규범을 들어 평가하기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전제한 뒤, “‘북 세습’이라는 쟁점에 대해 (남북)사회를 깊이 있게 반영했는지, (남북)사회의 가치관과 선입관에 도전함으로써 독자들이 기대하는 정직함과 리더십을 제공했는지를 자문할 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강태호 한겨레 국제부 기자 등은 남북한과 국제 정세의 관점에서 사설을 비판했다. 강 기자는 “독일 사민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인 하이데 지모니스가 남북이 통일과 관련해 유념해야 할 교훈으로 이야기한 게 2가지”라며 “하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은 (북한을)존중하는 입장은 있었는데, (세습에 대한)자신의 분명한 입장은 결여됐다는 점에서 경향신문이 지적할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과 냉전, 이념적인 영역과 프레임에서 진행되는 논쟁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제기한 논쟁이 생산적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고승우 미디어오늘 전문위원은 남북한 관계에서 미국 책임에 대한 과거 경향신문의 대북 보도를 언급하며 사설을 비판했다. 고 위원은 “6자회담 교착 등은 미국의 책임이 절대적인데, 최근 2, 3년간 보수수구라는 일부 매체와 일부 진보 매체의 대북, 6자회담 보도는 미국 평가가 미흡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없었다”며 “경향 사설의 혼란상은 과거 2, 3년간 (보도의)맥락으로 볼 때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권력 이동 부분만 짤라서, ‘봉건왕조는 웃긴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굉장히 불행한 태도”라며 “경향신문의 북한 권력층 보도를 보면 역사적 합리성이 배제되어 있다.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면서 무지막지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위원은 “4·19혁명, 6월항쟁, 선거혁명을 겪으면서 민주주의와 정치자유, 인권 신장을 가져온 우리 사회 시각으로 볼 때 투명하지 않은 북의 권력 체계 변화는 문제 있다”면서도 “남북 문제, 북한 문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남 이야기하듯 냉소적으로 말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남한도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지 않느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북한 세습도 문제 많지만 서로 손가락질 하면 결론이 안 난다”고 말했다.


 류정민 미디어오늘 취재1부장은 “민노당과 경향신문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폭력과 역폭력이 있었다”며 “경향신문의 사설은 민노당 논평에 대한 주장을 전개하면서 북한을 비판 않으면 옹호하는 것처럼 몰아갔는데, 이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 사상검증의 용도로 활용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류 부장은 “민노당 울산시당이 사설에 대해 경향신문 절독 선언을 한 것도 또다른 의미의 폭력성이 있다”고 했다.


 이택광 교수 등은 경향신문 사설이 던진 의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진보진영 내에서 80년대 이후 항상 쉬쉬했던 진보의 의제를 재점검하고 가보자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문제의 뿌리는 대단한 수사로 치장하더라도 근본적으로 PD(민중민주), NL(민족해방) 논쟁으로 귀결된다”며 “2008년 촛불 이후 한국에 공론의 장이 출현한 뒤 진보에 대한 요청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이 논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당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각자의 입장을 존중해주기 위해 진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똘레랑스 측면에서 접근하면 결국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갖힐 것”이라며 “(세습 논쟁 등) 진보 의제들은 공론의 장에서 다시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식 SBS 기자는 3대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태도가 진보진영의 입지를 좁힐 것으로 전망했다. 안 기자는 “‘햇볕정책 아니면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라는 입장을 펼쳤던 김대중 정부는 남북문제에 관심 없던 중도 세력까지 끌어와 외연을 넓혔기에 햇볕정책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며 “이번에 3대 세습은 진보세력의 영향력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보 진영이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3대 세습 문제를 통한 위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극복할 것이냐란 쪽으로 (논쟁의)초점을 옮겨가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라고 했다.


 김광원 순천향대 초빙교수는 “경향신문의 문제제기가 논란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사실상 진보진영의 의견을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아가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이번 논쟁은)향후 진보 언론이 북한의 권력 체계나 정치 체계, 정책 문제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해가느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목·이고은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