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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KBS 보도 일상적 검열한 길환영 사장, 간섭한 홍보수석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막말 논란 속에 보도 외압을 폭로하고 사임한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최근 다시 청와대와 경영진의 보도 개입 사례를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김 전 국장은 2013년 1월부터 1년간 보도국장으로 재임하면서 작성한 ‘업무일일기록’(비망록)을 지난달 법원에 제출했다. 말로만 전해져온 KBS <9시뉴스>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외압의 민낯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비망록을 보면 당시 길환영 사장은 물론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까지 <9시뉴스> 방영 전과 방영 후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뉴스 보도에 개입했다. 길 사장은 2013년 5월 대통령 방미 수행 중 발생한 청와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내일부터는 윤창중 속보를 첫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하고, 이 수석도 ‘대통령 방미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했다. 2013년 8월 KBS가 단독취재한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 보도는 길 사장 지시로 뉴스에서 삭제될 뻔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 국장이 ‘이 건을 방송하지 않으면 기자들을 통솔할 수 없다’고 버텨 보도를 했으나 보도순서가 6번째에서 14번째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노조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KBS 보도 개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해임,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_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이 수석은 2013년 10월 청와대 내부 행사를 전하는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 소식이 <9시뉴스>의 맨 마지막 순서에 보도되자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도 배치 순서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 국장의 비망록에는 이런 식의 부당한 외압 때문에 당초 제작진이 짜놓은 뉴스 배치 순서와 내용이 뒤바뀐 34건이 정리돼 있다. 이쯤 되면 KBS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의 일상적인 검열 속에 보도 자율성이 무너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시 수석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홍보수석으로서 사정하고 부탁한 것뿐이지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언론의 자율성을 대하는 정권의 인식을 그대로 대변하는 셈이다. 청와대나 사장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잘못된 보도 내용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특정한 보도를 넣고 빼도록 지시하고 편집순서까지 간여했다면 방송법 4조 2항의 방송독립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정권의 방송장악을 막고 제작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20대 국회는 공영방송의 정상화 입법을 더 이상 늦춰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