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의 열기를 안고 시작됐던 공영방송 파업이 어느덧 두 달을 향해 가고 있지만, 지난주 국정감사에서는 공영방송에 대한 감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적반하장의 표본 자유한국당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우르르 몰려가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에 으름장을 놓더니 아예 국정감사를 보이콧해 버렸다. 이렇게 비상식적 행동과 발언을 통해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만천하에 증명하고 있는 이는 한둘이 아니다. MBC 여의도사옥 브로커 역할을 했던 고영주 이사장은 “MBC가 공영방송이냐”는 질문에 “MBC는 주식회사”라고 강변하고, 작년 국정감사에서 “답변하지 마!”로 한껏 호기를 부렸던 고대영 사장은 국정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눈과 입을 꾹 닫은 채 앉아 있다가 우군 자유한국당의 지원으로 국감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MBC 노조원들이 13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국정감사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는 가운데 이효성 방통위원장(오른쪽)이 국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권호욱 기자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당한 압력과 통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아왔던 KBS와 MBC 구성원들은 처참하게 추락한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그저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 뒤틀린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정치권에 맡겨두고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권력에 굴종하는 속성을 스스로 바꾸겠다고, 앞으로는 눈높이를 시민에 두겠노라고 반성하고 다짐했다. 새로 출범한 정부여당과 방통위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게끔, 공영방송을 장악한 인사들이 왜 당장 물러나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들을 수집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냈다.

 

버티면 버틸수록 비리가 쏟아지고 빼도 박도 못하는 전횡과 불법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도록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공영방송 사태는 여전히 뭔가 꼬인 듯 막힌 듯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정치 문제로 접근하는 관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대영과 김장겸, 고영주, 이인호 등은 임기 보장을 무기 삼아 굳건히 버티고 있는데, 방통위는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며 전면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막장을 주저하지 않는데, 정부여당은 다른 정치현안들과의 연계 속에서 자유한국당의 눈치를 본다.

 

파업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 정점을 지난 듯하다. 최근 <공범자들> 무료 공개로 더 많은 시민이 공영방송의 문제에 공감하고 있지만, 파업에 대한 지지 열기는 수그러든 느낌이다. 2012년 파업 당시 ‘MBC 프리덤’ 1탄에서 “나꼼수면 충분”이었던 가사가 이번에는 “손석희면 충분”으로 바뀌었다. 공영방송 무용론도 들린다. 망가진 공영방송을 대신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한편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건 위험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이나 외면은 결국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하려는 불순한 정치인을 배양하는 토양이 될 뿐이다.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의 폐해가 고스란히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세월호 유가족의 절규는 잘 말해주고 있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하루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공정방송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도록 방통위는 조속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어떻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것인지 논의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 정비나 보완보다는 인적 청산이 최우선이다. 공영방송이 망가진 것은 언론을 도구화하려 했던 최고권력자와 그 공범자들, 부역자들 때문이었지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었다.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은 더 이상 정치권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자. 정치권은 큰 틀에서 법적, 제도적 지원을 하면 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방통위의 몫으로 넘겨주고 손을 떼야 한다. 방통위 역시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그 설립목적대로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 정치권이 아닌 방송 종사자들과 시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참여시켜야 한다. 정치권에 줄 댄 전문가나 시민단체들도 가려내어 배제해야 방통위의 정치종속을 단절시킬 수 있다.

 

방통위의 정치 독립은 방송의 정치 독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방통위가 정치권에 종속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그동안 경험으로 생생하게 학습했다. 현 정부여당이 지난 정부여당과 뭐가 다른지 보여줘야 하는 것처럼, 방통위 역시 과거의 방통위와 뭐가 다른지를 제대로 보이고 증명해야 한다. 장기전에 접어든 공영방송 파업은 그 시험대가 될 것이고, 방통위가 그 철학과 능력을 증명해야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김세은 | 강원대 교수·신문방송학>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