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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시론]왜, 하필 이인호 이사장인가?

새누리당에서 추천한 이사들만 모인 반쪽짜리 KBS 이사회에서 선출된 이인호 신임 이사장이 지난 18일 자신이 취임한 뒤 처음 열린 이사회에서 자신과 관련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야당에서 추천한 KBS 이사들과 언론단체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자신의 역사관에 대해 “편향된 운동권 교육을 받은 일부 정치인·교사·교수·언론인”들의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하면서, ‘편향된 운동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억지주장이라며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색깔론으로 변질시켰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인호 이사장이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국민TV는 이 이사장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유혈사태”라고 명명하고, 수많은 양민이 학살된 제주 4·3항쟁과 여수·순천사건에 대해서는 “공산당의 체제 전복 기도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 이 이사장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그런 식의 일(양민 학살)이 필요했다는 것이 비극”이라며 양민 학살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국민들을 억압한 독재정치에 대해서는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불미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시대를 앞선 진보적 독립운동가였다”고 치켜세우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재를 통해 경제발전을 촉진시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인호 이사장의 이러한 역사논리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것으로, 경제발전과 민생해결을 위해서는 독재자가 국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도 괜찮다는 논리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처럼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이인호 이사장은 정부 차원의 역사청산 노력을 “대한민국 전복 행위”로 매도하고, “역사청산위원회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전복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고, 정부가 앞장서서 돈을 댔다”고 주장했다.

사의를 표명한 이길영 KBS이사회 이사장 후임 이사 후보로 추천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방송통신위원회는 1일 최성준 위원장 주재로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KBS 보궐이사 추천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_ 연합뉴스


이인호 이사장의 KBS 이사장으로서 자질 문제는 단지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이사장은 잘못된 언론관 또한 가지고 있다. 이 이사장은 앞으로 KBS 프로그램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의 이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이 이사장은 2008년 <KBS의 이승만 왜곡>이라는 제목의 언론 칼럼에서 “방송국 자체가 검증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해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칼럼과 이 이사장의 발언을 연결해 분석해 보면, 이 이사장은 겉으로는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KBS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공영방송 이사장은 방송 제작 당사자들의 제작과 편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에 가장 앞장서야 하는 사람이다. 방송 제작자들의 제작 자율성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또는 방송사 간부들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공영방송 이사회와 이사장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인호 이사장은 이러한 역할을 망각한 채 앞으로 KBS 프로그램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평하고 비판하겠다고 밝히며 방송 제작자들의 방송 제작 자유를 침해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언론관을 가진 사람이 KBS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한 공영방송 KBS의 객관성과 공영성, 공공성 확보는 달성될 수 없다. KBS를 진정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인호 이사장이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최진봉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