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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따라잡기-라운드업

오뎅 이미지 정치의 실상 - '친시장 대통령' 콜라주

 이명박 대통령은 '친시장' 대통령이라 불리는데, 사실 MB물가 등 시장 국가 개입을 보면, 철저히 수요와 공급, 가격 원리에 따르는 시장주의라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죠. 친시장이라기 보단 친기업, 친재벌이지요. 다만 경제원론의 시장 말고 실제 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은 '친시장' 맞습니다. 이 대통령이 설을 맞아 다시 시장을 찾았습니다. 12번째입니다. 

이 대통령은 한 옷가게에서 “설 대목인데 경기가 좀 괜찮은가”라며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나타냈다. 한 디자이너매장에 들러서는 목도리 하나를 직접 골라 1만5000원을 지불했다. 한 노점에서는 꿀차를 마시며 “많이 팔았느냐”고 말을 걸고 주변 사람들에게 몇잔 대접하기도 했다. 장사를 한다는 20대 후반의 청년들에게는 “열심히 장사하고 끈질기게 하면 된다. 내가 장사를 해봐서 안다”며 본인의 가난한 시절 이야기도 꺼냈다. 인근의 설렁탕 가게를 찾아 야식을 먹는 코스도 빼먹지 않았다.

청와대 담당하는 박영환 기자가 쓴 기자메모 중 일부입니다.(기자메모 보기)
이 메모에는 이 대통령의 시장 방문 유형과 특징, 거리니까 패턴이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1. 시장에 가면 꼭 물품을 구매한다 2. 가난했던 옛 시절을 회고한다 3.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당부한다. 4. 설렁탕, 오뎅 등 야식과 간식을 꼭 먹는다 등입니다.

새벽 동대문 도매시장 방문한 이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새벽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 도매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설 서민경제 동향을 살펴보고 있다. 2011.1.29 jobo@yna.co.kr

1~4는 그간 시장 방문에서 대체로 반복된 것들입니다. 하나 추가하자면, 이날 방문에서도 함께 사진을 찍자는 한 상점주인에게는 "되도록이면 가게를 배경으로 찍으라"고 했는데, 몇몇 상인들에게 '행운(?)'을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시장 상인 물건을 사주고, 격려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대통령을 탓할 건 아닙니다. 
문제는 알맹이가 없는 거죠. 시장에 갈 때마다 재래시장 지원 대책 등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 수 없는 법입니다. 다만 민생 현장 탐방이라면, 서민들 이야기에 귀 귀울여야죠. '내가 해봐서 아는데, 끈질기게 하면 된다'며 인내와 끈기만 당부할 게 아니라 '끈질기게 해봤는데도 잘 안된다'는 시장 상인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게 순서 일 겁니다. 이번에도 보도를 보니 상인 고충을 들은 게 거의 없습니다. 2009년 6월 이문동 시장에 갔을 때 상인들이 '대형마트 때문에 다 죽는다'는 호소와 대통령의 동문서답 식 발언이 YTN돌발영상에 잡혀 논란이 된 기억 때문일까요. 청와대측이 어떻게 방문 동선을 짰는지 모르겠으나, 상인들의 돌발성 발언은 미리 차단한 것처럼도 보입니다. 
상인들이 설 특수에 먹고살만해서 아무 말 없었던 건 아니냐고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경향신문 전국부가 
설을 맞는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취재한 르포에 따르면, 기록적인 한파와 물가고, 구제역 및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때문에 전국 재래시장은 3중고입니다.  대형 할인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는 상존하는 위협세력입니다. 설대목 실종 재래시장의 눈물 / 르포보기 
이 대통령의 이날 동대문 시장 방문에는 이런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예전 방문 때도 거의 그랬습니다. 아래는 이전 11번의 방문기록입니다. 2010년 11월7일에 미디어로그에 오른 자료. 

일시 : 2008년 3월8일.
장소 : 서울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와 자양동 골목시장.
식사(간식) : 자양동에서 순대국밥으로 점심 식사
쇼핑 내역 : 도넛 한봉지
대화, 말씀 : 식사 도중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안으로 “재래시장 고유의 문화전통을 가미해 관광명소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 동석한 상인들이 ‘재래시장’ 어감이 안 좋다고 하자 “‘전통시장’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


일시 : 2008년 9월10일
장소 : 천안남산중앙시장
식사(간식) : ?
쇼핑 내역 : 배, 홍삼절편, 조기
대화, 말씀 : 상인들과 악수하면서 “많이 팔았어요?” “뭐 사셨어요?”

 

일시 : 2008년 12월4일
장소 :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쇼핑 내역 : 한묶음 5000원 하는 무 시래기 4개, 3포기(10㎏)에 3500원가량 하는 배추 500포기 구입
대화, 말씀 : “농협 간부들이 농민을 위해서 온 머리를 다 써야 하는 데 농협이 정치를 하니까 안된다. 농협이 벌어서 사고나 치고 있다”. 노점에서 무 시래기를 파는 박부자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건네줬지요. “하다하다 어려워지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을 줘요. 대통령한테 연락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일시 : 2009년 6월25일
장소 :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
식사, 간식 : 떡볶이, 고기낙지버섯전골
쇼핑 내역 : 뻥튀기 2개 구입
대화, 말씀 : “대형 마트 때문에 상권이 다 죽는다”는 상인 호소에 다른 시민과 인사. 한 구멍가게에서는 주인 말에는 답하지 않고 수행원들에게 ‘뻥튀기’를 사라고 권유. ‘대형 마트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상인들에게 “예전 내가 노점상할 때는 끽소리도 못하고…. 지금은 이야기할 데라도 있으니 좋잖아” “대형마트를 못 들어서게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 정부가 시켜도 헌법재판소에 가면 패소한다”

 

일시 : 2009년 9월4일
식사, 간식 : 어묵, 오이
장소 : 구리시 수택동 재래시장을 방문
쇼핑 내역 :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어치 구입해 꽃게 등 구입.
대화, 말씀 : 한 할머니가 갑자기 다가와 "아들 취직을 시켜달라"고 하자, "얘기를 듣고 오라"고 수행 참모에게 지시.

 

일시 : 2009년 9월10일
장소 : 남대문시장
식사, 간식 : 만두, 설렁탕
쇼핑 내역 : 전통시장상품권(온누리상품권)으로 손녀에게 선물할 한복, 무화과, 꿀타래 구입
대화, 말씀 : “명절기간 동안은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농축산품이나 전통시장 상품권 등을 주고 받는 미풍양속이 확산되는 것이 재래시장 활성화나 서민경제에 도움이 될 것” “추석도 다가오고 해서 워낙 (경제가) 어려울 때라 어떻게 되고 있나 보고 싶어서 왔다.”

 

일시 : 2009년 9월18일
장소 : 포항 죽도시장
식사, 간식 : 포항 도다리 물회, 우럭 매운탕, 오징어 전어 등 생선모듬회
대화, 말씀 : “이곳이 어머니와 함께 장사하던 곳”

 

일시 : 2009년 12월2일
장소 : 대구 서문시장
식사, 간식 : 수제비
쇼핑 : 털장갑, 붕어빵, 내복
대화, 말씀 : 2007년 9월 방문했던 시장 내 손수제비집의 주인 김기순 할머니와 전화통화. 할머니, 나 대통령이에요. 내가 그 때 국수 한 그릇 먹고 당선됐잖아요" "대선 때 왔을 때는 무슨 맛인지도 몰랐는데 오늘은 제대로 음미했다"면서 "아프신데 걱정하실까봐 말하는데 돈은 내고 갈게요". "여기가 잘돼야 한다. 서문시장이 잘되면 대구 경제가 살아난다"

 

일시 : 2009년 12월 4일
장소 : 법성포 굴비상가
쇼핑, 이 지역 의원인 이낙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의 친구가 운영하는 굴비 판매점에서 굴비 10만원 구입.

 

일시 : 2010년 7월22
장소 : 화곡동 까치산 시장
간식, 식사 : 만두, 칼국수
대화, 말씀 :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에서 40~50% 이자를 받는 게 맞느냐? 큰 재벌에서 이자를 일수(日收) 받듯이 이렇게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 채무를 진 어떤 이에게 “미소금융에서 돈을 빌려서 이 그룹 소속 캐피털에 갚는 걸로 해봐요.”


일시 : 2010년 9월3
장소 : 구리시 인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간식, 식사 : 해장국
대화, 말씀 : “물가 안정을 위해 농수산물을 긴급히 수입해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세관을 통과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식사를 같이한 노점상 할머니가 “지난번 가락시장에서 목도리 선물한 것을 봤는데, 그렇게 부럽더라”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시계를 풀어주며 “이게 청와대 시계다. 미소금융 꼭 찾아가 보세요”

 

미술 담당을 잠깐 해본 경험을 떠올려 이 대통령의 시장 방문을 구글 피카사를 이용해 콜라쥬를 해봤습니다.

먼저 먹거리입니다. 

 


다음 콜라주는 쇼핑입니다. 
 

 

 
이 대통령의 시장 방문은 주로 상인들과 만나 대화하고, 시장에서 식사하거나 먹거리를 사먹고, 물건을 구입하는 걸로 이루어집니다.

현장 방문 자체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현장의 시민 목소리를 듣는 일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재래시장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오뎅을 사먹거나 굴비를 구입한 게 재래시장 매출이 느는 경제효과로 이어졌다는 경제수치는 없지만, 대통령이 시장에서 먹고 장 보는 모습은 대중들이 재래시장을 친숙하게 여기게 하는 효과는 있을 듯 합니다. 대통령의 시장 방문 보도를 보고, 대형마트 대신 한번은 재래시장에 갈 수도 있겠지요. 아 대통령도 오뎅을 드시는구나 하는 이미지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뿐입니다. 대통령이 재래시장 자주 간다고 서민들, 중소상인들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시장 방문 기록을 찾은 건, 굳이 그의 식습성을 알아보려 한 때문은 아닙니다. 최근의 기업형슈퍼마켓 규제 입법이 지연되는 것 때문입니다. 

오뎅, 설렁탕을 사먹고 목도리, 청와대시계를 건네주는 거 무조건 나쁘게 볼 건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시장 상인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갖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책과 제도로 답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제도 개선, 정책 효과 면에서 대통령의 시장 방문은 하나마나였습니다.

여기 최근 조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최근 3년간 두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소 슈퍼마켓은 4년 동안 2만 곳이 문닫았습니다. ▶ 기사보기
 

2007년말 354개에 불과했던 기업형 슈퍼마켓은 이명박정부 들어 올 8월말 현재 820개로, 무려 2.3배나 폭증했습니다. 인근 가게, 재래시장 상인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30% 가깝게 매출이 줄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또 다른 수치도 있습니다. 서민 경기는 죽는데 대부업은 호황이라고 합니다. 대부업체 수가 6개월만에 600개 늘었습니다. 대출자는 22만명 증가했다고 합니다. 양극화 심화로 서민층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 기사보기
 

정권 바뀌고 감세부터 시작해 복지축소, 최저임금 문제 서민과 중소상인을 죽이는 제도나 정책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친서민, 친중소상인을 위해 제도나 정책을 바꾸려는 생각은 애초 없었는지 모릅니다. 이문동 시장 방문 때 대형마트 때문에 죽는다는 호소에
“대형마트를 못 들어서게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 정부가 시켜도 헌법재판소에 가면 패소한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시장과 중소상인을 위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을 지시할 게 아니라, 당장 SSM 규제 입법부터 하라는 말이 우선일 겁니다. 


대통령의 시장 방문은 이미지 정치, 정치 쇼라 봐도 과언은 아닐듯하네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이 대통령이 어제 재래시장에 10만원 들고 가서 크림빵 6000원, 뻥튀기 2000원, 오뎅(어묵) 한 개 사 먹었다는데 그는 지난해 종부세 감면으로 모두 2300만원 받았다. 2300만원에서 겨우 10만원 빼쓴 게 무슨 서민 행보냐”

 
다시 콜라쥬를 해봤습니다. 모자이크 식이 아니라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콜라쥬입니다. 아마 대통령의 시장 방문은 이렇게 아무런 형체도 없는 게 아닐까 싶네요. 이거 추상화같네요. 저는 이 작품의 제목을 '친시장'이라고 붙입니다.

김종목 기자 @jomos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