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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민비평

옳은 말 하고도 수세에 몰리는 이유

살다보면 옳은 말을 하고도 수세에 몰리는 때가 있다. 염세철학자로 불리는 쇼펜하우어가 요즘 유행하는 처세술책 같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쓴 이유도 자신의 옳은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세상이 야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헤겔의 관념론을 멸시하던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에 초빙되자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했다가 참패한다. 수강생 수가 5명밖에 안돼 결국 대학강단을 떠나게 되는데, 뉴턴의 굴욕이 연상된다. 미적분까지 발견하게 되는 수학자 뉴턴은 젊은 시절 케임브리지대학에 수학 강의를 개설했다가 수강생이 없어 폐강된 적이 있다.


‘협잡꾼 헤겔과 그 패거리’의 수사학에 맞서기 위해 쓴 이 책은 처세술이 대개 그렇듯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협잡꾼’을 위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악용되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면, 현 정권 당사자들은 그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의 처세술 정도는 읽지 않고도 체험을 통해 터득한 듯하다.


‘사안을 일반화해 보편적인 관점에서 반박하고, 논증이 안된 내용을 기정사실화해 전제로 삼고,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 과장하고, 상대방을 화나게 해 화를 내면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고, 질 것 같으면 갑자기 딴소리를 하고, 상황이 불리하면 재빨리 쟁점을 바꾸고, 최후 수단으로 인신공격을 한다.’(쇼펜하우어)


고도로 훈련받은 강건한 국정원 여직원의 증거인멸 행위를 ‘불쌍한 여직원 인권침해’로 일반화해 반박하고(박근혜), 논증은커녕 전혀 사실이 아닌 ‘NLL(북방한계선) 포기설’을 기정사실화하고(서상기·정문헌), 선거유세 때 폭로한 것이 회의록 전문을 불법 열람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임이 밝혀지자 “내가 발언한 것과 회의록이 왜 같았는지 모르겠다”며 딴소리를 하고(김무성), 국정원 정치개입 관련 국정조사가 시작되려 하자 회의록을 폭로해 재빨리 쟁점을 바꾸고(남재준), 노무현 대통령이 ‘칠거지악을 저질렀다’고 인신공격을 한 게(최경환) 대표적 사례다.


(경향DB)


이런 수법에 야당은 숱한 호재를 앞두고도 후퇴를 거듭하며 속절없이 정국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사실과도 맞지 않은 ‘칠거지악’은 그대로 넘어가고, 홍익표의 ‘귀태’와 이해찬의 ‘당신’만 구설에 올랐다. 박근혜 집권 이래 두 박 대통령은, 비판하면 혼나는 남한의 ‘최고존엄’이 되어간다. 국정원 대북심리전단이 대남심리전을 펴고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제대로 조사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선거불복’으로 몰아간 것은 압권이다. 만약 선거 과정에서 결과를 뒤집을 만한 부정이 있었다면 불복하는 게 민주주의다. 자기들은 ‘노무현 발언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탄핵까지 가결시킨 세력이 아니던가? 



일러스트 _ 김용민 기자


이렇게 된 데는 진보언론 책임도 크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 언론 지형에서 나름대로 역할들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친노 책임론’ 등 보수 프레임에 걸려들어 양비론으로 흐르거나 수세적으로 의제설정을 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에도 소수지만 양비론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칼럼과 기사들이 있었다.


사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정원 사태는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이슈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은 도청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우리에 견주면 아주 사소한 문제로 사퇴했는데, 주목할 사실은 여당인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탄핵에 가세했다는 점이다. 정파의 이해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74년 대통령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경향DB)


진보언론들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보다, 김무성·권영세·남재준 등을 주 타깃으로 삼은 것은 빗나간 겨냥이었다. 한 진보신문 칼럼에는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폭로와 국정원 댓글 수사결과 조작발표에 당시 박근혜 후보가 관여하지 않았을 거라며 ‘면죄부’를 주는 내용도 있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김무성과 권영세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과 종합상황실장이었는데, 그렇게 중요한 ‘선거대책’을 대통령 후보가 ‘상황’ 파악도 못했을까? 


남재준 국정원장이 남한의 국익에도 손해나는 ‘NLL 포기’를 주장한 것이 대통령과 교감 없이 가능할까? 교감이 없었다면 국정원장을 ‘셀프 개혁’으로 신임할 게 아니라 파면해야 옳다. 박 대통령은 국정현안에는 초연하면서 이른바 ‘막말 파문’과 관련해서는 ‘품격 높은 정치’나 주문하고 있으니 지지율이 60%를 웃돈다. 말의 품격이 없기로는 자신의 입으로 등용했던 윤창중 전 대변인이 최고수 아니었나? 남재준 사태도 ‘멸공’만으로 살아온 군인을 국정원장에 임명했을 때 예고된 ‘인사 참사’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일도 사민당인 브란트의 통일정책을 기민당인 콜이 계승해 통일을 이룩했다. 남북 간 합의사항조차 왜곡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언론은 “그러면 당신들 남북 화해정책은 뭐냐”고 들이대야 한다. 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비무장지대 생태평화공원’을 제안해 박수를 받았는데 실은 새로운 제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 위에 덧씌우려 했던 서해평화협력지대는 왜 논란이 돼야 하나? 


NLL 문제는 정치권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언론이 앞장서서 평화적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실현됐더라면 연평도 포격이 있었을까?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인정받기 전에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첫째 조롱받고, 둘째 반대에 부딪히고, 셋째 자명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얘기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평화구축은 조롱받는 단계로 떨어진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봉수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hibongs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