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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이정희 민노당 원내부대표 “우린 국회권위에 문제제기 하는 것…악수하면 끝나나”

ㆍ“소수정당 한계 느끼지만 계속 ‘대차게’ 나설겁니다”

의석이 5개뿐인 소수정당의 초선의원인데도 신문에 참 자주 등장한다. 현장을 열심히 쫓아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서울 경복궁역 앞에서 경찰에 연행됐고 지난해 8월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조 단식을 했다. 이달 초엔 국회 로텐더홀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다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또 한번 뉴스 인물이 됐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정희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40) 얘기다.

18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그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로 나뉜다. ‘대차게 잘했다’는 격려가 있는가 하면, ‘몸싸움은 보고 싶지 않다’는 질책도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정밀한 정책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데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몸으로 막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대한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로텐더홀 농성 과정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 약 8년을 일하다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 때와 지금,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시작할 때는 비슷한 점이 많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국회에서 법률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변호사 업무와 비슷한 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와보니까 다른 일들이 꽤 많더군요. 일단 변호사는 어쨌든 제3자죠. 싸운다고 해도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존중받는 재판의 구성원으로 싸우니까 한마디로 고상하게 싸워요.

그런데 국회의원은 훨씬 더 다양한 감정과 몸, 내 생활을 통해 내가 대변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느껴야 해요. 법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타협의 수단, 설득의 수단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방면에서 생각해야 하고. 거의 당사자와 일치하기를 요구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제는 제3자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원내에 들어와 일하면서 5석 정당의 한계를 절감했을 텐데요. 처음 등원하던 때의 기대와 희망이 여전한지 궁금합니다.
“장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로 살아온 세월 동안, 그 장벽에 송곳같이 작은 구멍 하나를 뚫자는 생각을 했어요. 많이 뚫다보면 무너질 때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고 있지 않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열흘 동안에, 한달 동안에 뭘 이루었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이룬 게 뭐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죠. 그런데 길게 놓고 보면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법안을 18대에서 다른 당 의원들이 일부 베껴서 내기도 하는 등 그런 논리들이 번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것이 쌓이면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비교섭단체라서 교섭단체 간의 의사 결정에 관여하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12월 예산안을 교섭단체들이 합의처리하려 했을 때도 민주노동당이 거세게 항의했는데, 비교섭단체가 교섭단체들의 논의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합니까.
“법조계가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곳인데 국회도 참 권위주의적인 곳입니다. 총선 때 의석, 이것이 이후 4년의 모든 것을 결정하잖아요. 지금 세 교섭단체가 있지만 그 교섭단체가 국민들의 지지를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더 많이 받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도 교섭단체를 구성해서 중재자를 자임하는 것이 국민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저희는 국회의 권위적인 구조, 교섭단체 위주 구조의 정당성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교섭단체가 감세법안을 합의했을 때 그 판에 들어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감세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세 교섭단체끼리 서로 악수하면 끝이냐. 그때 홍준표 원내대표의 이야기가 딱 그거였어요.

국회법에 교섭단체들끼리 협의하게 되어있는데 왜 여기 끼어드느냐. 저는 국회법을 무시하고 뛰어든 거죠. 얼마든지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다만 저희는 여론보다 딱 한발 앞서서 가야 되는 곳이니까, 늘 여론을 생각하면서 지지 받을 수 있는 선까지 가게 되겠죠.”


-여당의 독주를 저지하는 것은 좋지만 대응이 때때로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원내대표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을 찾아가 탁자 위에서 뛰는 모습이 보도됐습니다.
“당시 저희는 로텐더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경호과장과 경위들이 ‘여기서 회의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장소가 부적절하대요. 그래서 ‘장소가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는 당신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 걸릴 회의도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언제 끝낼 건 지 약속을 하라’는 거예요. 경호과장이 원내정당의 회의에 대해 언제 끝낼 지 약속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회의를 할 테니 비켜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달려들었어요. 뒤에 있는 플래카드를 잡아들고 가버렸으니 난리가 났죠. 저나 강 대표님이나 현수막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끌려다니다가 내동댕이쳐진 거예요. 강 대표님이 안 달려가셨으면 오히려 이상했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상황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그런데 대표님이 그 행동에 대해 ‘선을 넘은 것이었다’고 하신 것으로 저는 들었어요. 저는 처음에 그런 일을 벌였던 대표님의 행동도 이해가 됐고, 나중에 선을 넘었다고 인정하신 말씀도 이해가 됐어요. 대표님이 17대에서도 단식을 하시고 뛰어드는 일도 하셨잖아요. 대표님이 17대를 되돌아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계속 가라앉히고 그것이 대립으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아 오셨다고. 그래서 동료 의원들과 관계가 좋으세요. 과격함 내지는 저돌성의 이미지하고 굉장히 다르게. 저는 대표님이 그런 과정을 또 밟고 계시는구나, 노력하고 계시는구나, 이런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됐을 때는 이 의원이 소속 의원들의 명패를 바닥에 던지는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명패를 던졌습니까.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꽁꽁 숨어있다가 경위들을 불러 집기를 쌓고 문을 틀어막고, 외통위 위원들에게 2시까지 다 들어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고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가며 의결을 하고 뒷문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끄러운 이름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평생 해왔던 것 중에 가장 감정을 많이 표출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국회 로텐더홀에서 함께 농성했던 민주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먼저 점거를 해제했습니다. 그 때도 역시 비통한 심경이었는지요.
“민주당이 먼저 농성을 푼 것에 대해 뭐라고 할 마음은 없어요. 민주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있는 정당이잖아요. 전직 장관도 계시고 부총리하던 분도 계시고. 그분들이 열흘 넘게 몸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결단이라고 봐요. 미안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저희가 ‘우리는 남겠다’고 했을 때 민주당의 보좌진들, 당직자들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박수도 쳐주고…. 뭉클했어요. ‘열흘 넘게 같이 했던 것은 그대로 남아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어쨌든 같이 가야되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막 나가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민주당과 손을 잡아야 하고 같이 갈 겁니다. 그렇게 서운하진 않습니다.”


-민주당과 공조를 이어가겠다는 말씀인데 진보신당 쪽은 어떻게 보십니까. 다음 총선을 치르기 전에 진보 진영이 단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희는 지난해 7월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하고 진보신당을 찾아갔을 때도 ‘문이 열려있다’고 말씀드렸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같이 가보라는 이야기들이 많고 그것이 진보 또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분들의 명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명령에 따르기 위한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지에 대해서도 저희는 가능한 한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고요. 가능하면 빨리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민주노동당 의원이 된 지 약 7개월 정도 됐습니다. 18대 개원 이후 민주노동당과 이 의원 자신의 의정 활동에 점수를 매기신다면.
“밖에선 좀 달리 보실 수 있는데 저는 후하게 주고 싶어요.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고생하신 것을 아니까. 사실 민주노동당에 요구되는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정밀한 정책, 그리고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낼 것이 요구되죠. 상황이 급박할 때는 ‘진성당원이 7만~8만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10분의 1이라도 모여봐라’ 이런 얘기도 나오고. 그래도 대규모 탈당으로 밖에 있는 분들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의 심각한 고통을 겪은 정당이잖아요. 그것을 딛고 총선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치러냈고. 국민들의 요구에 따르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후한 점수를 드리고 싶어요.

저 개인의 활동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는 않죠. 노력하는 중입니다. 변호사였을 때 이 정도로 노력했다면 수익을 엄청나게 올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웃음) 마음 속에 아주 굳은 결심이 있습니다. 제 몸은 이제 제 몸이 아니니까. 제 스스로가 절실해진 것 같아요. 힘겨운 삶,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게 됐고.”


-2월 임시국회에서 ‘2차 입법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월 임시국회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언제든 강행처리될 가능성이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최저임금법,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다 올라올 가능성이 있어서 모든 힘을 다해서 막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저는 2월 임시국회가 한나라당이 하려고 하는 법안 위주로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설·조선·금속 부문을 위주로 구조조정 문제가 번져올 텐데 국회가 그 대책을 세우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것이 2월 임시국회의 주 의제가 돼야 한다고 제안할 생각이에요. 한나라당이 추진하려 하는 법안은 꼭 2월에 되어야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살림살이 문제 좀 해결하고 나서 나중에 논의를 하든 말든 일단 급한 것에 우선순위를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1월 임시국회와 마찬가지로 실력저지 외에 민주노동당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을까요.
“다른 방법을 계속 생각해야죠. 일단 꾀를 많이 내서 이야기를 많이 많이 하고, 길게 길게 하고요.(웃음) 정말 급한 것이 뭐냐, 우선순위를 계속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거죠. 가령 최저임금 문제도 최저임금을 낮추는 문제보다도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들에 대해서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 이게 우선돼야 한다고 봐요. 몸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대한 힘을 발휘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