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정동칼럼]오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 보도는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난 3일 SBS의 보도본부장이기도 한 김성준 앵커가 저녁 뉴스 첫머리에 5분 이상을 할애하여 방송한 사과 내용의 일부이다.

 

대통령 선거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SBS는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을 보도하면서 문재인 후보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오보를 내보냈다. 그리고 사과방송을 했다. 해당 기사 동영상도 삭제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오보를 문제 삼아 SBS를 강하게 질타했고, 경쟁 후보들은 사과방송과 동영상 삭제에 대해 격하게 항의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각양각색이다. ‘오보’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 사과방송에서조차 사실관계가 잘못되었다는 표현이 없었다는 것도 그 주장의 한 근거다. 오보는 ‘객관적 오보’와 ‘주관적 오보’로 구분된다. 이름이나 숫자를 잘못 쓴 것이 객관적 오보라면, 주관적 오보란 성급한 속단이나 무리한 추리를 기반으로 한 보도나 이해 당사자 한편만을 대변하는 편파보도, 그리고 게이트키퍼의 개입으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 보도를 포함한다. SBS의 보도는 분명한 오보의 범주 안에 있었다.

 

우리나라 뉴스 역사에 남을 엄청난 오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 파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정치적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면서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오보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 가능할까마는, 이번 보도를 김일성 사망 보도나 세월호 전원구조 보도에 비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이 같은 오보가 방송되었는지 철저하게 조사되어야 하고, 관련자들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겠지만, 보도 내용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해서 이를 방송사 차원의 ‘음모’로 보는 것 또한 빈약한 상상력의 결과이다.

 

언론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자주 오보를 만들어낸다. 10년 전 통계지만, ‘뉴욕타임스’가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를 한 건수가 한 해 3728건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언론사의 수준은 후속 조치에서 드러난다. 2012년 BBC는 사실상 특정 정치인을 지목하면서 아동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가, 취재원의 착각에 의한 오보임이 밝혀지자 해당 정치인에게 거액의 보상을 지급하고 사장이 사임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한 유력 신문은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범인 고종석이라며 보도했지만 오보임이 밝혀진 후에는 모호한 사과문 하나만 남긴 채 이 오보는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졌다.

 

SBS의 오보가 있기 며칠 전에는 JTBC가 오보에 대한 사과방송을 한 바 있었다. 후보들의 지지율 숫자를 반대로 기재한 그래픽이 방송된 다음날, 손석희 앵커는 “치명적인 실수이며, 문재인, 안철수 후보 측에 사과의 말을 전한다”면서, 작년에 저질렀던 JTBC의 또 다른 오보(영문 오역 보도) 사건을 굳이 언급했다. 몇 번의 작은 실수가 이어졌을 때 크게 각성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사과했다. JTBC와 SBS의 사과는 우리나라 언론계의 관습에서 상당히 벗어난 사건이었다. 권력의 압력이나 자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온갖 크고 작은 오보를 내보낸 후에도 이번처럼 긴 시간을 할애하여 보도 책임자가 시청자의 용서를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대하는 시청자·유권자들의 자세도 냉정하길 바란다. 정파적 이유로 흥분해서 음모나 압력을 들먹이기보다는, 우리나라 언론의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국경없는기자회’가 평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의 순위는 2000년대 중반까지 30~40위권을 유지하다 점점 떨어져서 지금은 60~70위권이 되었다.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하는 지수에서도 2010년 ‘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떨어진 이후 7년째 못 벗어나고 있다. 오보에 따른 반성과 사과가 많았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작 언론자유 지수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SBS의 오보로 오히려 이득을 보았을 것 같은 후보가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 “내가 집권하면 종편 4개 중에 2개는 없애버리겠다” “리서치 회사 2~3곳은 없애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공영방송 KBS의 이사가 온라인 매체에 “(모 후보의) 대역전 소식과 함께 보수정권 제3기 개막이라는 뉴스를 듣고 싶은 심정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글을 떳떳하게 싣는다. 정말 우리나라 언론을 위하고 걱정한다면, 이 현실에 더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언론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요소들이다.

 

윤태진 | 연세대 교수·커뮤니케이션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