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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연어 떼였다. 아래에서 위로 줄지어 흘러가는 이름은 끝이 없었다. 꼭 10년 사이 영화 속 ‘공범자들’에게 쫓겨나고, 징계받고, 부당전보된 공영방송 사람은 300이 넘었다. 꽤 긴 시간, 클로징 자막을 따라가던 눈에 이름 석 자가 꽂혔다. 25년 전 사건기자 시절 서울을 동서로 나눠 돌다 야근 종착지에서 맥주 한 캔씩 부딪치던 기자였다. 3년도 더 지났다. 한여름 밤 광화문 술집에서 우연히 합석한 그는 혀가 풀려 있었다. “어디 있어요?” “영업소 돌아요. 경기도에서.” 그는 “스케이트장이나 따분한 심의실보다 회사 꼴 보지 않고 나와 있는 게 맘은 낫다”며 내가 근황을 물어본 동기는 방송단체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3년간 후배를 뽑지 않아 ‘사건 귀신’이 됐던 그 동기들은 유독 짓궂고 장난 잘 치기로 유명했다. 제작거부 중인 기자들에게 “부정한 자들”이라고 공격한 오정환 보도본부장도 그 동기다. “술 마신 날엔 때려치고픈 맘이 더 불쑥불쑥 솟죠. 그래도 왜 버티는 줄 아세요? 관둬도 MBC가 제대로 된 그날은 한번 보고 관둬야죠.” 눈에 물이 고였다. 지난 16일 제작거부 선언에 이름을 올린 그는 지금도 ‘비상암 비제작 부서’로 분류됐다.

 

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봇물은 이렇게 터질 게다. <PD수첩>이 시작한 제작거부 물결은 시사제작국으로, 블랙리스트 터진 카메라기자로, 보도기자로, 전국지사로, 아나운서로, PD로 흘렀다. 350명이 넘었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빼앗기고, 아이템을 검열받고, 수정할 수 없는 앵커 코멘트를 읽으며 쌓인 울화는 다들 눈물과 같이 터졌다. 회사는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웃는다. 내 눈과 귀가 증거라고…. 허일후 아나운서는 “50번까지만 (방송 섭외) 까이기를 세다 그만뒀다”고 했고, 양윤경 기자는 “하루 종일 일 주지 않고 실적을 쓰게 하는 것은 고문이었다”고 했다. 경영진 스스로 “뉴스데스크 하는 기자들 90%가 비노조, 경력들”이라고 방문진에 실토한 게 백일하에 까진 판국이다.

 

정말 MBC의 DNA를 바꿔보려는 큰 그림을 그렸을지 모르겠다. 까칠한 손석희·김미화 쳐내고, 시사프로 문 닫고, 말 잘 듣는 기자·PD 뽑아온 이유가 그것일 게다. 박근혜 시대를 빛나게 하고 보수 중심세력으로 거듭나려는 내심이 없었으면 세월호, 탄핵 촛불, 한·일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보도가 그렇게까지 기울진 않았을 게다. 지금도 “오 나의 개돼지”라는 가사를 문제 삼아 KBS도 허용한 이승환의 신곡 ‘돈의 신’에 방송불가 딱지를 붙인 ‘가카왕국’이 MBC다. 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으로 이 시기를 관통한 김장겸이 “공영방송이 무너졌는지는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불퇴진 자세를 취했다. “애국시민들은 MBC밖에 없다는 것 아니냐”는 고영주 이사장의 말을 부여잡고 가려는 것일까. 피해자 코스프레는 진단도 처방도 틀렸다. MBC 뉴스의 위상은 곤두박질한 시청률이 말하고 있다. <공범자들>을 보며 머리 한쪽에선 일제강점기가 끝날 줄 모르고, 총과 문화정치로 조선인을 황국신민 만들려 앞장서고, 일왕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통곡하던 친일파가 떠올랐다.

 

영화 속 공범자들은 사실 한 줌도 안된다. 해도, 목에 걸리는 게 있다. 화풀이식 대응은 경계할 일이다. 노동부가 적발한 MBC의 부당노동행위는 수사로 이어진다. 11월엔 보도와 인력 운용이 어땠는지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한다. 시간을 다퉈도 길은 정공법으로 잡고, 위법한 경영자는 처벌하면 된다. 십리·백리·천리길의 봇짐은 다르다. 천리길의 봇짐은 공영방송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약속을 뒤집었듯이 문재인 정부도 화장실 오갈 때 맘이 같아야 한다. 공영방송은 전리품이 아니라는 심지·뚝심을 보여야 외풍 타지 않는 독립된 방송이 세워질 수 있다. 대선 해인 2012년 봄 MB 정권 고위 인사는 술상에서 “차라리 MBC는 저렇게 놔두는 게 어떨까”라고 자문했다. <PD수첩> 돌아가고 제대로 써 젖히는 뉴스보다 파업 중인 게 낫다는 복심이었으리라. 7월까지 이어진 170일 파업을 보며 그 취담은 아직 잔혹한 정권의 뼈 있는 잔상으로 남아 있다.

 

24일부터 MBC 파업 투표가 시작됐다. 정의로운 파업이다. 월급 올려달라는 쟁의가 아니라 공정방송하자고,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들자고, 적폐 쌓인 안에서 먼저 일어나는 파업이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며 모멸감 주던 경영진에겐 그 말이 돌아갈 테다. 보도국 밖으로 밀려난 양윤경 기자가 회견장에 나설 용기를 낸 것은 “안에서 문 두드리니 소리를 좀 들어주세요”라는 맘이었다고 했다. 파업은 월급봉투 없이 가는 시리고 긴 싸움이다. 추석 안에 끝날까. 해를 넘길까. 나는 기꺼이 <무한도전> 결방을 참을 수 있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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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