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프로포폴·표절, 심층 접근 아쉬워

정일권 |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흔히들 정치, 경제, 안보 등과 관련된 경성 뉴스가 사건, 사고, 문화, 스포츠 등의 연성 뉴스보다 중요하다고들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육식과 채식이 조화를 이뤄야 하듯 신문의 구성 역시 경성뉴스와 연성뉴스의 구성이 적절해야 한다. 그 적절한 비율은 언론사별로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연성뉴스라고 해서 가볍게 듣고 금방 잊어버려도 되게 기사를 써도 되는 것이 아니다. 경성뉴스와 마찬가지로 배경이해와 해석을 위한 충분한 정보나 문제가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연성뉴스도 있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프로포폴 연예인 사건과 청문회장에 선 고위 공직 후보자의 표절에 관한 기사는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뉴스였다. 두 기사는 대상과 행위 종류라는 측면에서 확연히 구분되고 둘 사이의 연관관계는 거의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연예인과 고위 공직자 그리고 금지약물의 불법 투여와 학위논문 표절은 분명히 구별된다. 그런데 연예인과 고위 공직자 모두 타인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문제가 된 행위가 모두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문제가 된 금지약물 남용과 표절이 사회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기사는 개인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이런 행위를 가져다주는 사회적 환경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3월26일 사회면에는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세 배우의 사진이 실렸고, 28일 종합면에는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된 이성한 경찰청장 후보자의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기사 내용은 당사자의 변명을 위주로 하고 있다. 이런 뉴스 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행위를 한 이유를 분석해 보면 부적절한 사회적 요구와 과정에 비해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적 풍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도 개인의 일탈적 행위를 낳는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기사는 아쉬움이 크다.


이성한 경찰청장 첫 회의 (경향DB)


먼저 프로포폴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배우들에게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야윈 몸매를 요구하면서 연기는 자연스럽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또한 더 나은 몸매라는 결과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나 자신이 아닌 시청자 당신을 위한 행위’라고 말하며 과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배우들의 태도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정말 시청자를 위한 행위가 맞을까? 그런 시청자들이 있다면 불법적 행위가 용인되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필요했다. 해당 여배우들의 주장은 국제학교와 같은 특수학교에 자녀들을 사회적 배려 대상으로 입학시킨 사회 고위층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 차원에서 목표가 선하고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과정의 합리성과 도덕성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프로포폴 사건은 이런 우리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잘 드러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이 세 여배우의 얼굴보다는 훨씬 더 많이 그리고 깊이 다뤄졌어야 한다. 


표절기사도 마찬가지다. 표절이라는 문제행위를 개인적 도덕성의 결여로만 해석한 기사는 한 측면만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난주에 보도된 이성한 후보자의 경우뿐만 아니라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표절은 대부분 인용표기 누락, 분석 자료 중복, 인용한 논문의 일부 복사 등 논문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번 기사에선 이런 표절행위를 한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묵인한 학위 수여자의 문제도 지적됐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직장을 가진 학생들의 학위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논문 표절 사실이 밝혀진 뒤 학위를 받은 자와 준 자에 대한 조치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추가 취재가 필요했다.


논문 표절이 관리자에게도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책으로 관리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대학평가의 항목에 논문 표절 관리를 넣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당 학교에서 부여한 학위 중 일부를 표본 조사해 부당한 학위 수여 비율에 따른 불이익을 준다면 대학 당국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엄격하게 학위 심사를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실력이 없는 학위 보유자도 줄어들 것이다.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어떤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피상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파헤치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는 보도를 경향신문이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