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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KBS공정은 ‘공공연한 정권 홍보’


“공영방송 기능 상실” 비난 여론 비등

시민사회 등 KBS 안팎에서 나오는 KBS 방송 내용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정권 홍보와 권력 눈치보기는 열심, 권력 비판은 무시·외면.’ KBS가 사실에 입각한 보도 내용마저 통제하며 정권홍보 방송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추적 60분>의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 불방 사태가 단적인 예다. 권력비판과 의제설정 등 공영방송 기능 상실과 함께 스스로 지켜야 할 편성권과 독립성마저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방영된 <추적 60분> ‘천안함’편의 한 장면. 사측은 ‘4대강’편 보류 결정 이전 ‘천안함’편 때도 제작진에게 내용 삭제 등을 요구해 마찰을 빚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추적 60분> 불방 사태에서 공공연한 권력 눈치보기가 드러났다고 말한다. 새노조는 14일 청와대 김연광 정무 1비서관의 “KBS가 천안함 <추적 60분>에 이어 경남도 소송 관련 <추적 60분>을 하는 등 반정부적인 이슈를 다룬다며 KBS가 왜 그러느냐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런 분위기도 참고해야 할 것 같다”는 발언을 공개했다.

청와대 등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말 한마디가 사실상 보도지침으로 작용하고, 간부진은 굴복하는 듯한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엄경철 새노조 위원장은 불방 사태 이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사측 간부들이 공개 자리에서도 청와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신료 인상이 KBS의 주력 핵심 사업인데, (권력 눈치보기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말을 하고 다닌다”고 전했다. KBS새노조도 규탄 성명에서 “<추적 60분> ‘천안함’ 편이 방송되고 청와대 심기가 불편했는데, ‘4대강’까지 방송된다니까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지난 11월17일 방영된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도 통제했다. 새노조는 “(정부와 군이 자초한 불신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최근에 있었던 가리비 논란과 휘어진 스크루 조사를 스웨덴 팀이 분석했다는 합조단의 거짓말, 천안함 유실 무기를 공개하겠다고 해놓고도 피폭 처리해버린 말바꾸기였다”며 “간부들은 이 사례들을 모두 빼라고 요구했다. 이 가운데 가리비 논란이 삭제됐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특종을 하고도 보도가 나가지 못한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추적 60분>은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막말’ 동영상을 입수했으나 KBS 고위간부의 반대로 프로그램 제작이 무산됐다.


‘여당 눈치보기’도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6월 지방선거 때 울산방송국의 ‘지방자치 20년 특별기획-울산과 지바, 두 도시 이야기’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결방됐다. 당시 기자협회 KBS 울산방송지회는 “한나라당은 예고편을 보고 자당 후보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방영될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가처분신청을 냈다”며 “가처분 심리 당일 오전 결방을 결정한 것은 한나라당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했다.

<9시뉴스> 등 KBS 뉴스 보도에서 뉴스 선별 기준은 ‘권력’이 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12월 중 방송 모니터 브리핑 주제를 보면, KBS 보도 내용이 어떻게 고착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위헌적인 UAE 파병…KBS, 띄우기 급급’ ‘1600억원 증액된 형님예산…KBS 물타기 안간힘’ ‘MB, FTA 놓고 안보 성과 운운…KBS, 노골적인 힘싣기’ 등으로 정권 입장에 치중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KBS를 항의방문했다. 이들은 “최근 한나라당 예산 날치기 처리 사태에서 물리력을 동원하고 폭력을 행사한 한나라당을 마치 물리력과 폭력의 피해자인 것처럼 본말을 전도시켰다”며 “KBS는 여야 충돌로만 부각시켜 여야 모두 당한 사람이나 가해한 사람이나 싸잡아 매도하는 양비론적 보도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KBS는 대신 청와대와 한나라당, 재벌 등 기득권에 불리한 보도는 아예 외면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KBS <9시뉴스>는 박근혜 전 대표 사찰 문제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 등은 침묵했다. 지난 8월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의 결정타가 된 ‘박연차-김태호 사진 발견’도 메인뉴스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KBS의 한 구성원은 “민영방송인 SBS보다도 못한 방송을 하고 있다”며 “나조차도 너무 급격하게 보수화된 KBS 뉴스를 잘 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불리한 내용은 이제 알아서 축소하거나 보도하지 않고 있고, G20보도에서 보듯 홍보를 넘어 정권 찬양과 미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며 “언론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 눈치만 보며 마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추적 60분> 불방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더 심각한 점은 조·중·동 등 수구보수 언론이 던지는 의제들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KBS 새노조 등 구성원들이 맞서 싸우면서 이 국면을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동천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사측이 일방통행 보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KBS 내부 구성원들이 그런 보도와 방송을 눈감고 있었던 것도 작용했다”며 “<추적 60분> 불방을 두고 프로그램의 제작진, 새노조가 경영진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공영방송을 살리려는 상식적인 노력을 하는 데서 긍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호 KBS 이사는 “<추적 60분> 불방사태에서 경영진이 자아검열을 통해 권력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타협적 자세를 보이는 행태가 드러났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가 전리품으로 전락해 사장들이 보도 내용을 통제해온 게 사실이고, 통제하면서 정권에 보답한다는 의식을 아직 못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권력 비판 기능을 상실하면 국민한테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방송이 권력 감시 견제를 포기하면 누가 보겠느냐”며 “언론 자유는 스스로 지켜야 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