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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기자칼럼]‘베댓’과 뉴스 편향을 넘어

‘쥐박이, 닭그네, 문재앙….’ 이는 이미 초등생도 아는 낱말이다. 어느 사회나 일탈자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의 인터넷 여론지형에선 ‘악화가 양화를 내쫓는 상태’다. 베댓(베스트댓글)이 바로 여론이자 지지율로 인식되는 왜곡된 현실 때문이다.

 

뉴스가 과함과 부족함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해로울까. 약 4년 전 우연히 미국 ABC의 아침방송을 보다가 낯익은 태극 문양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간만에 접한 국내 소식에 반가움은 찰나였고, 혼자 보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방송 진행자들이 키득거리며 비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미 며칠 지난 뒷얘기였다. 한국에서 이런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면 ‘화석’ 내지 ‘구석기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네이버가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불거진 댓글 조작 논란과 관련, 댓글 추천에 한도를 설정하고 댓글을 연속해서 달 수 있는 시간 간격을 늘리는 등 내용의 정책 개편안을 25일 발표했다. 사진은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짧은 경험에 비춰 미국인에게 뉴스는 한마디로 ‘없으면 말고’에 가까워 보였다. 관심 없으면 말고, 내 일 아니면 말고, 돈 없으면 말고…. 이런 광경들을 보면 ‘뉴스는 뭘 좀 아는 자들이나 의도적으로 소비하는 고급상품’이란 느낌이 든다. 뉴스들은 그나마도 연성화돼 있다.

 

언론연구기관인 하버드대 니먼랩은 올 초 “페이스북이 뉴스를 너무 적게 노출한다”는 실험 결과를 내놨다. 제일 많이 보는 뉴스피드 첫 게시물 10개 중 정치, 경제, 스포츠, 연예, 탐사보도 등 뉴스 콘텐츠가 아예 없는 경우는 참가자의 약 50%에 달한다. 10명 중 7명(73%) 이상은 뉴스피드 첫 화면에서 1개 이하의 뉴스만 접한다.

 

반면 어떤 곳은 뉴스를 너무 많이 노출시킨다. 국내 포털이다. 수년 전 한 사석에서 당시 김상헌 네이버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네이버는 언론입니까, 아닙니까?” 그는 즉답을 피했다.

 

포털에 뉴스 서비스는 ‘돈도 안되고 사회적 관심으로 부담만 크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뉴스가 바로 돈은 안되지만 이만한 유혹장치는 없다. 폴리네시아 일대에 사는 새틴바우어라는 새의 수컷은 온갖 파란색 물건들, 예컨대 물병 조각 따위를 물어다 둥지를 치장한다. 짝짓기를 위한 암컷 꼬드기기용이다. 포털에 주수입원인 광고를 위해 뉴스가 파란 물병 같은 격이라면 억측일까.

 

어지간한 재벌보다 네이버 영향력이 더 크다. 이해진 전 이사회 의장이 그룹 총수를 뜻하는 ‘동일인’에 지정된 것은 사회적 책임을 더 지라는 뜻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에도 빠듯한 네이버, 카카오가 뉴스 서비스로 홍역을 치르는 건 씁쓸하다. 뉴스에 너무 무관심한 것도 문제지만 요즘은 지나친 것이 더 걱정거리다. 국가정보원과 국군 기무사의 댓글부대, 최근 드루킹 사건의 주요 놀이터 또한 포털이다.

“소셜미디어 업체들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부지불식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범죄적이다. 선거의 진정성 등 민주주의 기능에 광범위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큰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올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한 말이다.

 

포털 뉴스 편집에 언론사 자율권을 주고 알고리즘을 개편하고는 핵심이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같은 데 뉴스 관리를 통째로 넘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구글처럼 ‘아웃링크’로 완전 전환해야 옳다.

 

다만 순기능도 계산해봐야 한다. 뉴스 약자의 목소리가 더 묻힐 위험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뉴스를 마음껏 누린 면이 있어서다. ‘촛불혁명’도 이런 가운데 나왔다.

 

미국, 일본식 우민화에 빠지지 않고 건전한 여론마당으로 거듭날 방법을 모색할 때다. 네이버, 다음이 댓글을 한 달 동안만이라도 완전히 닫아보는 실험부터 해보는 건 어떨까. 과연 소통이 막힌 답답한 한국 사회가 될까. 그간 민주주의에 지은 크고도 깊은 죄의 대가를 어떻게 치를지 포털이 답할 차례다.

 

<산업부 ㅣ 전병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