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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공직자의 트위터 이용자 차단은 ‘위법’

무기가 족쇄가 된다. 트럼프의 트위터 말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언론매체에 대항하기 위해 트위터를 무기처럼 사용해 왔다. ‘언론사 패싱’의 도구로 사용했다. 기자와 언론사를 모욕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반복적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망하고 있다고 조롱해 왔으며, 시엔엔은 아예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일종의 왕이다. 뉴욕타임스를 보는 유료독자는 약 350만명인 데 반해, 트럼프는 5000만명이 넘는 트위터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에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뉴스거리에 목을 매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있다. 역으로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추종하는 계정은 달랑 48개뿐인데, 그것도 대부분 자기 회사, 가족, 측근들일 뿐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비판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을 꾸준히 차단해 왔다. 트럼프로부터 차단된 사람들 중에는 ‘러시아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 아니냐’고 비난했던 시민, ‘아마 힐러리 클린턴을 좋아하나봐’라고 비꼬았던 청년,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차단됐다고 믿는 다수가 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는 평소 트위터에서 특별히 강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단됐다고 믿는 여성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5월23일 트럼프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가 사용하는 트위터 계정은 일종의 ‘공공토론장’인데, 다른 이용자를 무단히 차단함으로써 ‘공공토론장에서 관점차별할 수 없다’는 헌법적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미국 자유주의 언론은 이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비록 즉각적인 계정차단 금지명령이 아니라 트럼프의 결단을 기대해야 하고, 그것도 상급심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말이다.

 

판결의 핵심에 ‘공공토론장에서 관점차별 금지의 원칙’이란 개념이 있다.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공공토론장’이라 한다. 집회나 소통을 목적으로 공원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런 장소에서 시민의 발언을 그 내용에 담긴 관점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규제해서는 안된다. 얼핏 생각하면 트위터 계정을 공공토론장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트위터는 사적 기업이고, 트럼프의 계정은 트위터가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트럼프가 계정 내에서 발언하고 응답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상호작용 공간’은 공공토론장이 된다고 보았다. 공공토론장은 정부소유 공원과 같은 전통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공공버스에 부착한 광고공간이나 공립학교 e메일 시스템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은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이 창출하는 상호작용 공간은 대량의 응답과 공유가 발생하는 일종의 광장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사적인 이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그의 보좌관은 특히 이 공간을 활용해서 정치적인 발언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외교문제를 포함한 정부 정책을 공표하는 데 사용해 왔다. 이런 공간에서 공직자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한다는 이유로 다른 이용자의 발언을 제한하기 위해 무단히 상호작용 권한을 제한하는 일은 공공토론장을 ‘관점차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므로 위헌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주의 깊게 트럼프의 발언 내용 때문에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는 자신이 공약하고 추진하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옹호할 권리가 있다. 이를 ‘정부발언의 원칙’이라 하며, 이는 법의 보호를 받는다.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발언을 한 ‘내용 그 자체’를 이유로 위헌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자신의 계정에서 타인의 상호작용 행위를 제한하는 일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 때문에 일반 이용자는 트럼프의 발언에 응답하거나, 공유하거나, 확인하기도 어렵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미국 수정헌법 1조가 금하는 정부의 개인의 발언의 자유의 제약이 된다.

 

만약 트럼프가 다른 트위터 이용자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뮤트’했더라면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뻔했다. 트위터는 맘에 들지 않는 다른 이용자를 뮤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뮤트를 당하는 이용자는 자신이 그렇게 됐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상대방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 무시받게 된다. 이 기능을 이용해서 맘에 들지 않는 이용자를 안 보이게 했다면 상호작용 공간 자체를 제약하는 일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위터를 둘러싼 미국 대통령과 연방지방법원의 다툼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일단 인터넷 서비스는 이미 공적인 토론공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공직자의 인터넷 서비스 계정은 더욱 그렇다.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치적 논쟁이나 사회적 논란이 아니더라도 공적인 함의를 갖는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차단이나 삭제와 같은 행위도 ‘민주적 여론형성 과정’에 대한 함의를 갖게 된다. 선출직 공직자는 물론 일반 공무원들도 인터넷 서비스 계정을 이용해서 시민들과 상호작용함에 있어서 발언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