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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몰카 근절 위해 정부 기관의 인식 달라져야

2018년 5월19일, 여성과 관련해서 단일 의제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불법촬영물 편파 수사 규탄 시위는 불법촬영물, 소위 ‘몰카’ 문제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불법촬영물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증가하고 그 범위와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불법촬영물’ 혹은 ‘디지털 성범죄’로 재명명하게 된 것조차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불법촬영물은 한 인디밴드의 노래 가사에 ‘야동’으로 언급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해외 P2P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국산야동’이라는 명칭으로 유통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불법촬영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부터 여성가족부를 주축으로 불법촬영물에 대한 관련 법제도 정비와 규제 강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 기술들을 시의적절하게 규제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당장 ‘지인합성능욕사진’이라고 불리는 사진의 합성과 유포 문제는 작년부터 정비하기 시작한 규제 영역 안에 포함되기 어렵다. 불법촬영물은 최초 유포자뿐만 아니라 이를 관람하는 자와 재유포하는 자 역시 피해를 확산시키고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제 방안이 아직 없다.

 

그런데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와 규제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관이 여성이 경험하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여성의 권리 침해 문제로 제대로 다루지 않는 현실에 있다.

 

이번 집회와 같은 주제로 진행된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경찰 측은 남성 피의자가 훨씬 더 많이 구속되었다면서 성차별 수사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런데 여성들이 문제제기하는 핵심적 부분은 수사기관이 여성의 피해를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로 취급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불법촬영물 신고 및 삭제 요청을 하고, 촬영자 및 유포자 처벌을 위한 수사 요청 운동을 꾸준히 진행해온 민간단체 DSO(디지털성범죄아웃)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비협조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비판해 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촬영물에 대한 관계 기관의 안이한 대응 태도에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난 혜화역 시위를 통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분노의 바탕에는 여성에게 동등한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을 정부 기관의 대응을 통해 확인하게 되면서 느끼게 된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이 동등한 시민권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법무부가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훼하는 변론요지서를 제출한 데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통상 낙태에 대한 논증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간 충돌로 대립되는데, 이렇게 대립항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 역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법무부는 한술 더 떠서,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다가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보호할 가치가 더 적고 낙태를 하려는 여성이 문제라는 변론 구조를 채택했다. 이러한 논변은 단적으로 여성을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성적 대상 혹은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이와 같은 시각은 특히 온라인 문화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국산 야동’ ‘몰카’ ‘유출 사진’ 등으로 명명하여 불법 촬영물을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오락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온라인상에서 해당 영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짤방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남성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대상화된 인식 구조가 가감없이 드러나는 것이 단체채팅방에서의 여성 동료에 대한 성적 비하와 대상화, 몸에 대한 품평 행위들이다.

 

온라인 문화와 디지털 기술 자체가 이런 문화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위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하고 여성의 대상화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게시글과는 상관없는 여성 사진이 ‘짤방’으로 첨부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시판 문화에서부터, 단체채팅방에서 “좋은 것”이라며 제공되는 각종 링크 주소들을 통해 쉽게 불법촬영물을 볼 수 있는 현실, 불법촬영물인 것을 인지하면서도 시청과 재유포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비공개촬영회를 통해 촬영된 여성의 사진을 품평하고 재유포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도구화, 그리고 젠더 위계구조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장기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포함한 제대로 된 인권 교육이 중요해지는 맥락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와 공공 기관이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현실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민사회 영역 못지않게 정부와 공공 기관의 젠더 리터러시 향상이 시급한 이유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