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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정동칼럼]성추행 배우 논란의 진짜 가해자

관련 기사가 1000건 가까이 쌓였다. 영화를 촬영하다가 벌어진 일이 발단이었다. 술취한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후 아내역을 맡은 배우는 상대 배우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강제추행치상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1심에서 피고인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 재판부는 유죄로 애초의 판결을 번복하였다. 피고인 남배우는 자신의 신상을 드러내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마침 한 언론사가 피고인의 결백함을 보여주는 듯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후속기사는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은 수천개의 댓글을 달았다.

 

여배우 A와 배우 조덕제 사이 성추행 법적공방 관련 기자회견 현장. 24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스톱 영화계 내 성폭력, 남배우 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에서 주최 측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여배우 A의 손편지도 함께 공개됐다. 경향신문DB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주인공도 여럿이다. 2015년 4월에 벌어진 실제 ‘사건’의 주체는 감독과 두 배우다. 2016년 12월과 2017년 10월에 두 ‘판결’이 있었고, 이 사건의 주체는 판사이다.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은 ‘디스패치’가 있었고, 그 이전과 이후 수백건의 기사를 찍어낸 언론들이 있었다. 흥분과 비난과 냉소를 담은 댓글들의 생산자들도 있었다.

 

이 사건은 진실공방하는 남녀 배우 두 명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포함한 다수가 참여하여 의미를 만들어낸 담론적 사건이다. 유죄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전체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수많은 대중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판결을 내린 듯도 하다. 판결을 전한 온라인 기사들, 피고인과 피해자 측의 해명·반박의 중계 기사들, ‘디스패치’가 공개한 동영상과 분석기사, 이어진 어뷰징 기사들, 그리고 익명의 ‘댓글러’들이 SNS에 쏟아낸 갖가지 주장들이 개별 판결의 근거가 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 이 담론적 사건의 ‘범인’, 즉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가장 못된 가해자는 언론이다. 우선 디스패치의 보도는 비윤리적이며 무익한 선정적 보도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지만 실은 ‘기자의 (돈 되는 글을 쓸) 권리’만을 휘두르는 기사의 전형이었다. 이미 ‘오마이뉴스’가 지적했듯, 영상을 짜깁기하고 전문가 인터뷰를 자의적으로 인용·해석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준수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감독의 디렉션을 경청한 것처럼 편집을 했고, 영상전문가들이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처럼 구성하였다.

 

무엇보다도 1, 2심 재판부가 모두 메이킹 필름을 신중하게 검토했음에도, 마치 판결이 번복될 수 있는 대단한 증거가 새로 나타난 것처럼 강조했다.

 

메이킹 필름이 공개된 이후 급하게 휘갈겨 쓴 타 언론사들의 기사들은 더했다. “메이킹 필름 공개. 유죄판결 뒤집힐까?” “판 바뀌었다. 여론 남다른 반응, 판결 영향 미칠까” “제2의 예원-이태임?” 등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쓴 제목들이 태반이다. 판결문을 제대로 읽고 기사를 쓴 기자는 소수였을 것이다. 윤리준칙을 떠올렸던 기자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가 늦으면 타사에 밀린다는 압박감과 연예 기사는 적당히 써도 된다는 안이함만 작동했을 것이다. 세월호 보도 직후의 언론계 반성은 이런 기사와 무관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육두문자를 쓰며 피해자를 비난한 ‘댓글러’들도 무책임한 보도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사건의 공범자였다.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제목만을 찾아보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소리치고, 인권을 존중하는 척하면서도 피해자의 이름과 사진은 왜 안 나오냐고 항의하고, 동영상 자료가 공개되니 앞뒤 살필 생각 없이 피해자를 욕한 사람들이다. 피해자가 남배우의 연기 수위를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거나 남배우가 피해자의 하체를 만졌다는 사실은 무죄 판결이 났던 1심 판결문에서도 인정했던 부분인데, 얄팍한 기사 몇 개 훑어보고 피해자 가슴에 못 박힐 글들을 써 젖힌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실질적 가해자는 특정 배우 개인이 아니라 열악한 제작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때,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촬영 당시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은 채 폭력적인 강간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오래전 벌어진 일이었지만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들은 경악하며 한탄했고 반성했다. 거의 50년 전에 일어났던 경악할 일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점만으로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연기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거나 연기자는 참아야 한다는 고조선시대 변명은 그만 하자.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이, 그리고 시간에 쫓겨 리허설도 제대로 못하고 촬영하는 일은 반복하지 말자.

 

다시 화살은 언론을 향할 수밖에 없다. 영화계의 잘못된 관례가 있다면, 혹은 ‘가짜뉴스’가 횡행한다면,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고 바로잡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독자들이 엉뚱한 댓글을 달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연예기사라고 다를 것은 없다. 누가 비밀연애를 하는지, 누구 옷이 더 아슬아슬한지를 ‘국민의 알 권리’ 이름으로 밝히는 것이 언론이 아니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