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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추적 60분 보류는 KBS의 ‘자해’

김종배 | 시사평론가

솔직히 놀랍지 않다. 아직은 뇌신경이 제대로 작동하는 편이라 자극의 법칙에 충실하다. 그래서 KBS <추적 60분> 방송보류가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다. 한두 번이어야 자극을 받지….
 
이것도 놀랍지 않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8일 열린 방송보류 규탄대회에서 전한 사측의 기류 또한 놀랍지 않다. “공개회의 자리에서 사측 간부로부터 청와대 얘기가 자꾸 나왔고, 수신료 인상 얘기도 꺼내면서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하더라”는 전언 또한 새로운 게 아니다. KBS의 반 공영적 모습에 수신료 인상 열망이 스며있다는 기존 분석을 재확인하는 전언일 뿐이다.

흥미로운 건 따로 있다. KBS 사측이 지금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되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측이 방송보류 결정을 내리고, 새노조가 규탄대회를 열던 8일까지만 해도 그랬는지 모른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는 정권에 잘 보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사측이 보기에 밀어붙이기에 능한 정권에 편승해 강행처리라도 하는 게 옳지는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달라졌다. 8일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유혈이 낭자한 몸싸움 영상을 부각해 예산안 강행처리 잔영을 지우려던 시도는 물거품이 됐고, 정부여당은 매서운 후폭풍에 휘말렸다. 여론이 들끓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로 삿대질하고, 한나라당 안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김영삼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1996년 노동법 날치기 국면과 비교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청와대에 불평불만을 늘어놓겠는가.

이 상태가 지속되면 수신료 인상 동력은 사그라진다. 어차피 언론시민단체와 야당이 반대하는 사안이기에 방법은 강행처리하는 것뿐인데 제 코가 석 자인 한나라당이 남의 밥그릇 챙겨주려고 또 다시 매를 벌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가면 수신료 인상 동력은 완전히 소진된다. 달력이 2012년을 향해 한 장 두 장 뜯겨질 때마다 청와대의 악력은 약해지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마당쇠 기질 또한 줄어든다. 생존에 몸이 단 그들이 총대를 멜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혹시 모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때 끼워팔기 될지 모른다. 이명박 정권이 하늘이 두 쪽 나도 처리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게 비준안이니까, 야당이 땅이 갈라져도 기필코 막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게 비준안이니까 또 한 번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강행처리 수순이 남아있다. 이때 수신료 인상안이 끼워팔기 품목에 오를지 모른다. 예산안 강행처리 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파병안이 끼워팔기된 것처럼 수신료 인상안이 한두름으로 엮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용케 수신료 몇 천 원을 더 챙길지는 몰라도 그것보다 더 큰 걸 잃는다.

끼워팔기가 이뤄지는 시점은 조·중·동 종편이 허가된 후다. 다시 말하면 조·중·동 종편에 대한 반발 여론이 성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조·중·동 종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안이 강행처리되면 에스컬레이트된다. 그 부당성이 더 많이 부각되고 그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더 넓게 확산된다.

그뿐인가. 한·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 후폭풍이 수신료 인상에까지 파급되기 십상이다.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한·미 FTA 반발을 조직화하면 더불어 수신료 인상 반발도 조직화된다. 5공 시절의 수신료 납부거부운동이 재현될 바탕이 조성되고, 수신료는 ‘맷값’이 된다.

그때가 되면 또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일’이 나타난다. <추적 60분> 방송 보류를 비롯한 숱한 반 공영적 모습들이 반발과 거부의 근거가 될 것이다. KBS는 지금 자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