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오보가 아니다. 가짜뉴스도 아니다. 허위조작정보라고 할 수도 없다. 엄정한 취재와 유려한 글쓰기로 이름을 떨치던 한 언론인이 쓴 기사가 허구라는 사실이 언론사 자체 조사로 드러났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7년간 탐사물과 피처물을 쓰면서 존경받던 클라스 렐로티어스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다.

 

렐로티어스는 2018년 독일 언론인상 피처부문 수상자다. 이 상이 아니더라도 그는 고품격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칭찬받던 바로 그것, 즉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 인물에 대한 접근, 절묘한 인용문들이 허구였다고 한다. 그는 취재 장소에 가지 않고 상황을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고, 당사자를 만나지 않고도 인품을 묘사하는 마술을 부렸다. 취재한 내용에 여기저기 그럴듯한 내용을 보태서 작문을 했다.

 

슈피겔은 유럽의 초일류 언론이다. 한 주에 약 73만부를 판매하고, 온라인으로 65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거대 언론사라서 그런 게 아니다. 슈피겔이 지난 70년간 제공한 탐사보도는 신랄하기가 창 같았다. 기획으로 선택한 주제는 화제가 됐다. 피처물의 문체는 언제나 당대 독일 지성인에게 자극을 주었다.

 

훌륭한 언론사가 대체로 그렇듯이 슈피겔은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과도한 문체 때문에 지성인은 물론 당대 권력자로부터 비판받는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슈피겔은 사실성과 객관성을 필요 이상으로 주창하기도 하고, 실제로 내용의 사실성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렐로티어스 사건이 터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슈피겔은 이 사건을 스스로 폭로했다.

 

우리만 언론인을 ‘기레기’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 최악의 욕설은 흔히 배설물이나 짐승을 부르는 일인데, 언론인이 바로 그런 배설물과 설치류에 비유되는 경우가 잦다. 요즘 미국의 극우 활동가들이 뉴욕타임스와 같은 주류 언론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사기언론(Lugenpresse)’이란 용어는 독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과거 나치는 유태인 자본에 얽힌 자유주의 언론과 반파시즘 노선을 견지했던 공산주의 언론을 ‘사기언론’이라 부르며 선동했다. 이 비열한 전통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슈피겔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온 독일과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이 렐로티어스 사건으로 어떻게 격발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슈피겔이 ‘사기언론’이란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안 모레노, 세계를 돌면서 슈피겔을 위해 취재해 온 기자다. 그는 렐로티어스와 함께 일하는 가운데, 렐로티어스가 쓴 흥미로운 인용문과 묘사에 사실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슈피겔 편집자에게 의심스러운 바를 보고했을 때, 슈피겔 동료와 선배들은 그가 유능한 렐로티어스를 모함한다고 역으로 의심했다. 슈피겔은 독자에 대한 사과문에서 모레노와 렐로티어스가 사내에서 일종의 사실확인 대결을 벌인 과정을 밝혔다.

 

폭로가 언론의 소명이라면, 자기폭로야말로 가장 고귀한 소명이다. 특히 그 소명을 다른 언론이 아닌 자사에서 해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언론이다. 진정한 언론이란 두려움 없는 폭로자다. 따라서 ‘사기언론’을 포함한 온갖 비난을 두려워해서 자사 기자의 특종을 감추겠다고 생각할 수 없다.

지난 21일 슈피겔은 영어판 웹사이트에 또 다른 특별한 정정보도와 사과문을 냈다. 2017년 3월 ‘작은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나갔던 자사 기사에 대한 것이다. 렐로티어스는 당시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퍼거스폴이란 마을의 주민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마을은 지난 40년간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2012년부터 투표성향이 변했다. 급기야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63%에 달했다.

 

퍼거스폴에 살던 두 명의 젊은이가 우연히 자기 마을에 대한 렐로티어스의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취재가 성실하게 이루어졌는지 의심하게 됐다. 마을 주민의 신상에 대한 정보는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한 묘사까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렐로티어스가 밝힌 대로 한 달여 동안 퍼거스폴에 머물며 기사를 썼더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슈피겔은 즉각 두 젊은이가 퍼거스폴 지역신문에 낸 폭로기사에 응답해서 자체적으로 사실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퍼거스폴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실수 없는 언론이란 없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는 최선을 다해도 막을 수 없는 오류가 개입하기 마련이다. 이런 오류와 실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언론의 품격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악당의 은밀한 활약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언론이란 없다. 선한 자도 험한 곳에서라면 악당으로 보일 수 있는데, 언론 환경처럼 험하고 바쁜 곳에는 악행이 확실히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악당을 가려 악행을 폭로하는 일이야말로 진짜 언론의 임무다. 그것이 사내에 있건, 사회에 있건 말이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