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특수부대가 5·18에 개입했다고 한다.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간첩이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영웅이란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9년이 지나고,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32년이 경과한 대한민국 국회의 공청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시민들은 물론 공청회를 주최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이런 주장을 얼마나 믿을지 의아하다. 주장이라는 게 근거가 있어야 평가할 수 있는데, 근거는커녕 주장조차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군이 참전한 작전이라면 전투라 불러야지 ‘폭동’이든 뭐든 될 수 없겠다. 북한군의 침투를 막지 못한 당시 국군은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한국당 의원들조차 북한군 개입설을 진심으로 믿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 당 안팎의 극우세력을 아우르기 위한 정치적 전술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청회 이후 후폭풍으로 한국당의 지지율이 오히려 하락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당내 갈등도 심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소동은 잘못된 정치적 전술에 따른 역효과일 뿐이다.

 

‘5·18 망언’을 접한 시민들의 가슴은 얼얼하다. 곰곰이 따져 보면 분개할 일이지만, 특별히 사리에 밝거나 의롭지 않아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있다. 동료 시민들이 불의에 항거해서 저항했다는 이유로 학살을 당한 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무참하게 말할 수 있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당하거나, 희생자의 가족이 된 운명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무정하게 대할 수 있나.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해서 그대로 두면 안된다. 무신경한 멍청함은 버섯처럼 음지에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자폭하는 정치적 술수라고 해서 비웃기만 해서는 안된다. 음침한 술법을 기획하는 자들이란 수치심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 무도한 주장을 파헤치고, 정치적 수작을 폭로해야 한다. 역사적 거짓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고, 나쁜 정치도 저절로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지, 무모함, 무신경에 대한 맞대응이 지나쳐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법률을 도입하면 위험하다.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 일부에서 역사왜곡을 처벌하는 법률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18왜곡처벌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자살골인지, 아니면 뭐든지 처벌해야 속이 편하겠다는 심성에서 비롯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만은 지적하고 싶다. 1980년 신군부는 항쟁하는 시민을 학살했던 것만 아니다. 그들은 공식적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서 배포하고,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는 시도를 위법으로 몰아서 처벌하기도 했다.

 

그건 독재자의 억압이고 이건 경우가 다르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물론 다른 점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이 같고 다른지 잘 살펴야 한다. 모든 권력은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여기서 전유라는 말이 어렵지만, 일단 필요한 변용과 무리한 활용 사이에 있는 어떤 뜻이라고 해두자.

 

역사상 최악의 사태는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탄압의 도구로 전유할 때 발생한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가 집권한 사실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 국회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면, 다음 정부에서 누가 어떤 법을 만들지 알 수 없다.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나 2010년 천안함 폭침은 물론 정부수립이나 6·25에 대해 어떤 사실을 공식화해서 그것을 도구로 삼아 어떤 주장을 탄압할지 알 수 없다.  

괜한 염려라고? 지금 폴란드에서 홀로코스트부정방지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찾아보라. 역사적 사실을 핑계로 삼아 누가 누구를 탄압하는지 확인해 보라.

 

‘기억을 통제하는 법’은 위험하다. 기억의 범위를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일단 규정한 경계가 자유를 탄압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제인권위원회는 1996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을 처벌한 프랑스의 결정이 인권규약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2011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견표명을 처벌하는 법은 인권규약이 부과하는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향적으로 발표했다. 늦었지만 현명한 결정이라 하겠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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