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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대화의 힘을 믿는 자세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유시민과 홍준표가 유튜브에서 공동 채널을 열어 맞대결을 펼친다고 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쪽에서 공통 주제를 정해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홍준표의 <홍카콜라> 제작진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단다. 


볼 수 있다고 해도 5월 말 이후에나 가능하다던데, 생각만 해도 재밌겠다. 우리나라 좌우를 대표하는 최고의 입담꾼이 겨루는 논전을 생생한 날것으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매가리 없는 지상파 방송토론이나 관전평에 그치는 종편토론을 넘어선 진정한 토론을 기대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시작한 개인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나는 사실 알릴레오와 홍카콜라가 함께 어떤 형식과 규칙을 채택할지 가장 궁금하다. 양측에서 먼저 안을 내고 토론을 거쳐 합의해야 할 텐데, 이 합의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사회자를 초빙할지, 의제는 어떻게 정할지, 발언권 주고받기 규칙을 도입할지, 이용자 참여를 얼마나 보장할지 등 사안이 많다. 특히 토론 중에 ‘울거나 도망가기 없기’ 같은 행동적 규범이나 ‘욕하거나 떼쓰기 없기’ 같은 내용적 규범을 도입할지도 궁금하다. 나로서는 제발 내용규제 없이 그냥 날것으로 토론해 주길 바랄 뿐이다.


분열과 반목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좌우합작 프로젝트가 무르익는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국회는 물론 시민사회 곳곳에서 이념과 가치를 둘러싼 투쟁이 일어나고, 이익과 권리를 다투는 대결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투쟁과 대결을 조장하는 지식분자들은 서로 토론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상대방이 토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토론해 봤자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전자라면 서로 상대방을 얕잡아 보다가 함께 사소해지는 격이고, 후자라면 자기편 이익만을 챙기려다가 모두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토론해 봤자 위험할 뿐이라고 판단한 결과 토론을 회피할 수도 있는데, 이는 그나마 나은 경우라 해야겠다. 지식인이 자신의 무능함이 초래할 재난을 피하려고 자기보호라는 소심한 미덕을 발휘한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자유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활동을 재개했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튜브 채널 ‘TV 홍카콜라’의 코너. 유튜브 ‘TV홍카콜라’ 캡처


의견지도자 중에는 때로 반대편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기 위해서 토론을 거부하거나, 심지어 상종할 수 없는 대상으로 격하하는 이들이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경우다. 


첫째, 상대방의 사상과 발언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발언권과 인격권을 갖춘 동료 시민임을 거부하는 자세가 그렇다. 상대방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모순이 지독하다. 둘째, 토론과 숙의의 효과를 믿지 못하는 자세도 그렇다. 미리 정한 토론의 방식과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토론의 효과를 믿지 못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민주정에 참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념과 도덕에 대한 논쟁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엊그제 열린 슬라보이 지제크와 조던 피터슨의 토론을 보면 알 수 있다. 논쟁을 지켜본 세계 시민들의 관전기가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제크와 피터슨 가운데 누가 이겼는지, 누가 실망스러웠는지,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는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토론이 토론을 낳는 경우라 해야겠다.


피터슨의 마무리 발언이 인상적이다. 서로 관점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당부였다. 그는 이 발언으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지제크는 좌파라고 해서 언제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화답했다. 생각 없이 상대방을 파시스트로 몰아붙이는 일 자체가 게으름의 발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피터슨과 지제크는 명백히 서로 다른 이념을 갖고 있지만, 함께 토론의 효과를 믿고 있었다. 


유시민과 홍준표의 프로젝트가 지제크와 피터슨 간 토론보다 더 흥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흥한다는 건 물론 유튜브 방문자를 긁어모아 광고수익이나 구독료를 나누어 챙긴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 간에 정치토론이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할 수 있다는 경험을 우리 시민들에게 제공했으면 좋겠다. 치열하지만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어떤 사실에 대해 합의하고, 어떤 주장에 대해 합의할 수 없는지, 바로 이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의견지도자들도 독백이 아닌 토론의 장에 참여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면 좋겠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