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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NGO 발언대]취재라는 이름으로 용인했던 언론의 ‘강간문화’

최근 기자들로 구성된 단체 카톡방에서 취재과정에서 얻게 된 불법촬영물과 개인정보가 공유되고, 성매매업소 알선 등 불법행위가 만연했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에게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기자로서의 책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든 아니든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남성중심적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남성연대의 공간이었다. 기자 사회의 일상문화가 얼마나 깊이 강간문화와 연루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2018년2월23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해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토론회가 열렸다. 김영민 기자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이 일부 기자들의 일탈행위나 우연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 언론들은 앞다퉈 보도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건은 미디어오늘 단 한 곳에서만 보도했다. 이후 언론보도가 늘었지만 그것은 언론노조 등 단체들의 엄정 수사 촉구 성명이 연달아 나오고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면서다. 소라넷, #미투운동,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사건들을 거치며 불법촬영물과 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얼마나 높은지, 불법촬영물과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사회현안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들이 왜 유독 이 사건에는 무관심하고 침묵했을까? 이 장면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고 이 사건의 본질을 말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일 이 사건과 관련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 김세은 교수는 이 사건은 일부 언론인들의 일탈이나 일부 남성 기자들의 박약한 젠더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강간문화와 여성 혐오 정서의 연속선에 존재하며, 수십년간 언론계 내에서 ‘취재’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왔던 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진단했다. 참석자들도 모두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강간문화를 방조하고 때로는 공모해왔던 언론의 관행이 만들어낸 예고된 참사라는 데 공감했다. 언론들이 오랫동안 이런 행위를 ‘취재행위’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강간문화 카르텔의 구성원이자 주요 주체로 기능했고,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것. 그럼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실체를 숨기려 꼼수를 부리는 언론의 모습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성폭력 문제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도 희화화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낙인찍는 근거로 언론보도가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언론 내부의 남성중심적 인식과 문화는 ‘보도’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권위를 부여받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때로는 문제 자체를 보이지 않게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왜곡되게 보이도록 하여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강간문화를 유지·확산·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것이 이 사건을 통해 확인된 진실이고 언론계가 직시하고 환골탈태해야 하는 현실이다. 


언론의 공적 역할 때문에 얻어진 개인정보를 사적인 용도, 불법적인 일에 사용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선 안된다. 또 개인의 책임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이 언론계 전체에 있고 이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관행’이나 ‘취재행위’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언론계 전체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관행을 혁신해야 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