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인지적 편향과 리터러시 교육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시민성의 요건들이 있다. 타인의 이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숙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들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예컨대 정의, 형평성, 분배, 차별 금지 등이 대표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 미디어와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다른 의견을 노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한 대학에서 불거진 인권 교육 문제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월19일, 연세대학교는 신입생들에게 필수교과목으로 도입하려던 온라인 교육 ‘연세정신과 인권’ 강의를 선택 교양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기독교 단체가 성평등, 난민을 주제로 하는 강의가 ‘역차별’이고, ‘젠더’라는 말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며, 난민을 주제로 다루는 것 자체가 무분별한 난민 수용을 부추긴다고 하면서 강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데 대한 대응이었다. 


사실 위와 같은 주장은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에, 이것이 어떻게 온라인 공간을 통해 유통되고 사실로 확정되는지와 관련하여 이해하고 논의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 이견 노출과 숙고의 장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특정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여기면서 다른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잘못된 정보와 편견에 기초하여 타자를 배척하는 인지적 편향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중들의 인지적 편향 문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보고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유튜브와 같은 1인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유튜브와 같은 1인 방송이 어떤 추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사한 영상들이 추천되고 같은 주제의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특정 정치적 입장의 채널을 한 번 보게 되면 다른 입장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러한 문제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게시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권, 젠더, 난민과 같은 주제마다 등장하는 이런 주장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견에 대해 들어보거나 숙고해보려는 시도가 전혀 없이, 무조건 자신의 생활 세계에 대한 신념을 유지하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런 강의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행동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지적 편향에서 유래된 것이다. 반대 시위는 강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시작됐다. 공개된 강의 주제에 젠더가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난민이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삶과 타인의 목소리에 대한 듣기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초·중·고 및 대학 교육 영역에서 인권 교육, 페미니즘 교육 등이 필요한 것은 미디어 환경이 이처럼 이견 노출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혐오와 차별을 공고히 하는 정보들이 너무나 손쉽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리터러시 교육이 함께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혐오, 난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종종 여론이라 믿는 현실 역시, 이렇게 적극적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이견에 귀를 막은 다음, 자신의 의견에 맞는 사실을 조합하여 만들어질 수도 있다. 교육 영역조차 없다면, 이러한 제한된 미디어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생기기 어려운 세상이다. 인권 교육은 단지 한 대학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교육 영역에서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이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대학 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