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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집회와 시위의 민족

우리 이제 집회의 민족이라고 하자. 흥이 많아 놀기도 잘하고, 성질이 급해 배달도 잘하지만, 역시 우리는 시위에 능하다. 뜻이 유사한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면서, 서로 의지를 확인하며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무려 일주일 사이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 거대 집회 세 개를 가뿐히 치르고, 월요일이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회와 시위의 민족답게 이참에 원망의 민족이니 거짓말의 종족이니 하는 수동적이며, 부정적인 자기 암시를 털어내자. 만민공동회부터 3·1운동, 4·19혁명, 5·18운동, 6월항쟁, 촛불행동, 그리고 지난주까지 이어진 집합적 의지의 표출을 돌이켜 보면, 단순히 열정이나 원망 또는 어떤 책략으로 환원할 수 없는 진득함이 우리에게 있다. 한 방으로 끝내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가는 실천력이 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시끄럽고, 추잡하고, 무엇보다 무질서해서 싫다는 사람들이다. 과연 가까이 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예컨대 개혁인지 반동인지 알 수 없는 주장, 저항을 넘어선 위헌적 선동, 증오와 혐오의 악다구니, 다중의 선의를 남용하는 장삿속, 저의가 불순한 전략전술론, 그리고 언제나 노골적이어서 유치하기까지 한 권력욕이 보인다.


그런데 집회란 이런 것들과 다른 좋은 어떤 것들이 섞인 도가니다. 달궈진 도가니에 무엇이 담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할 일이 있다. 풀무질로 도가니의 온도를 높여야 불순물로부터 금을 분리할 수 있듯이, 더 많은 참여와 관여,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만 인민의 의지의 형성이라는 금과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도가니는 결국 다른 자유들을 형성하는 자유, 즉 발언의 자유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 자유는 때로 시끄럽고, 추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데, 그래서 제 할 일을 한다.


이른바 ‘조국사태’는 두 거리집회로 진화했고, 이미 새로운 비등점을 향해 끓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국민이 두 쪽 났다’고 개탄을 하는 자들이 있다. 마치 언제는 ‘한쪽짜리 국민’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아서 유감이라는 듯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두 거리집회가 증명한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물론 자세와 행동도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화문과 서초동에 서로 다른 구호들이 난무하고, 뉴스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다른 생각이 가득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갖춘 공중들이 지금 여기에서 행동하고 있으며(방관도 행동이다), 이는 집합적으로 어떤 결말을 향해 나가고 있다. ‘한쪽짜리 국민’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지, 심지어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역동적인 전개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자랑스러운 집회와 시위의 민족에 두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집회와 시위의 문화를 가다듬어 무슨 한류의 명물로 만들어 수출해 보자는 식의 제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일인데 잘 보완해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성찰해 보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첫째, 집회 참여인원을 정교하게 세는 법을 가다듬자. 두 거리집회가 남긴 교훈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 집회가 빈약하다고 조롱하고, 내 것만 크다고 자랑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논란이 심하니 아예 인원을 세지 말자는 대응도 유아적이다. 민주주의란 본디 주장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계수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산수를 잘하고 정보통신기술에 능한 사람들답게 현명한 방식으로 집회 참가자를 추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과 규범을 가다듬어 실천에 적용해 보자. 야간에 집회를 하면 안된다는 위헌적인 주장이나, 얼굴을 가리고 시위하는 사람을 처벌하자는 퇴행적 주장을 다시 꺼낼 수는 없다. 이번 두 거리집회로 얻은 또 하나의 성과는 현행법의 위헌적인 요소들은 이미 실효적으로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현행법의 무리한 확장이나 자의적인 집행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발언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