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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아동성착취물’ 선정적 보도에 대한 단상

아동성착취 영상물을 유포, 판매해 온 웹사이트 운영자가 법적 양형 기준보다 훨씬 낮은 처벌을 받은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운영자뿐만 아니라 웹사이트에서 아동성착취 영상물을 이용한 자들이 받은 처벌이 국제 기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관대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각종 언론들이 이를 보도했다. 관련 보도 중 아동성착취 영상물의 내용, 피해 아동의 연령과 착취 행위 내용을 세세하게 보도하거나 제목을 통해 강조하는 행태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초기에 단순 ‘아동음란물 공유’ 등으로 알려져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상세한 보도들을 통해 관심 의제로 부상하지 않았냐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안을 보도하는 데 아동성착취 영상물의 내용과 피해자의 연령대 정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위키트리 등 소위 소셜미디어 뉴스 서비스들의 제목은 오로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성착취 피해를 보도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지양해야 할 것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면서 범죄 자체를 소비하여 피해자를 다시 한번 대상화하는 태도이다.


오히려 이러한 선정적 정보가 없이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문화적 인식 수준을 더 심각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보도들이 ‘아동음란물’ 유포 등의 표현으로 해당 사이트에서 일어난 범죄 행위를 표현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우리나라 법에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되어 있는데 언론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 역시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되는 것이며, 해당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시정을 위한 공론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음란물에 대한 법의 통상적 이해는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성적 수치심의 표현은 성범죄와 불법촬영물 범죄에까지 적용되는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음란물을 단순히 성욕을 자극하는 내용물로 취급하면서, 성적 대상화의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유머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일도 많다. 예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후방주의나 엄빠주의라는 제목으로 올라오는 성적 노출 이미지들은 커뮤니티 이용자 간 유대감을 형성하는 친밀감 구성 행위로 가볍게 여겨진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음란물’을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는 ‘야동’이라는 줄임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무해한 취미 활동의 일부로 대하는 것이었다. 아동음란물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용어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아동청소년 성적 대상화 문제에 대한 감수성은 낮은 수준이다. 아동 이미지를 성적 암시로 사용한 광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쓸데없는 트집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이 불과 최근의 일이다. 아동청소년과 성인 간에 발생하는 성 문제를 성착취로 개념화하는 캐나다의 경우와 달리, 우리 사회는 아동청소년 성매매, 더 나아가 원조교제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아동청소년이 성인을 유혹했거나 혹은 돈을 보고 접근했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인식이 만연해 수많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판결들이 내려져왔다. 


이번 사건의 양형이 턱없이 낮은 것은 양형 기준 자체가 낮은 것도 원인이지만, 판사의 재량권이 과도하게 발휘된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재량권 발휘가 가능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보도에서 몇몇 언론이 초기에는 ‘아동음란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지적에 따라 ‘아동성착취물’로 표현을 바꾼 것은 중요한 변화로 보인다. 법이 보수적으로 움직이더라도, 언론의 경우는 사회 진보를 위한 공론을 형성하고 법과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