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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정동칼럼]성명서 발표한 법조기자들에게

MBC <PD수첩> ‘검찰기자단’ 편이 방영된 이후, 중앙언론사들의 법조출입기자단이 반박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PD수첩>은 “법조기자의 취재 현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과 오류투성이”라고 한다.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말 유감이다. 이런 성명서를 발표하는 패기가 유감스럽다.


기자들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는가? 오래된 언론학 교과서가 물었던 질문이다. 시대나 나라에 따라, 언론사에 따라, 기자에 따라 답이 다를 테니 위험한 일반화는 참기로 하자. 하지만 ‘일반 독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며 기사를 쓰는 기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조사에 의해 쉽게 확인된다. 기사 초고를 읽을 담당 차장이나 부장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답도 많았고, 경쟁사 기자가 생각난다는 답도 있었다고 한다. 광고주를 고려한다는 답도, 취재원을 생각하게 된다는 답도 많았다. 연구차 만났던 한 기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반 독자’는 준거집단에서 점차 멀어진다는 말이었다. 고려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아진단다. 이런 말도 했다. 특정 업계를 취재 대상으로 삼을 경우, 기사를 쓸 때 자꾸 해당 업계 관계자들이 기사를 읽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자주 보아온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계속 볼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조출입기자단의 성명서를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기자들은 누구를 염두에 두며 이 성명서를 썼을까? <PD수첩> 제작진일까? ‘일반 독자’들일까? 혹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은 아닐까?


<PD수첩>은 아주 새로운 내용도, 놀랄 만큼 심층적인 내용도 별로 없다. 검사들은 기자들을 이용해서 여론을 한쪽으로 유도하거나 수사를 용이하게 하려 하고, 기자들은 적당히 협조하면서도 친한 검사들을 활용해 호시탐탐 특종을 노린다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다. 기자들이 취재원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이해관계까지 함께하는 현상은 출입처 제도의 어두운 면이라는 비판을 오랜 기간 받아왔고, 특히 신진 언론사들에 진입장벽이 터무니없이 높은 청와대와 법원·검찰은 애초부터 원성 자자한 출입처였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몇몇 인터뷰와 자료들, 그리고 구태를 개선하자는 제안 정도에 발끈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성명서 내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하는 것도 모자라, 가명에 대역 재연까지 써가며 현직 검사와 법조기자를 자칭하고 나선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의 허구성은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해명을 할 필요도 없다. 법조기자 본인들이야말로 실존인물인지도 알 수 없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수도 없이 인용하지 않았던가? ‘한 시민의 의견’은 또 얼마나 많이 등장하던가? “전체 법조기자단을 범죄 집단처럼 묘사해 특정 직업군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했다”는 구절도 있다. 내게는 <PD수첩> 속 법조출입기자들이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이유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들로 보였다. 우리는 관습대로 하루하루를 성찰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을 범죄자라 부르지는 않는다.


성명서가 ‘법조출입기자단 일동’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소속 22명 이름으로 발표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KBS, MBC, 경향신문, 한겨레 등의 소속 기자들은 성명서 발표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법조기자단 단체카톡방에 “팀장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성명서는) 법조기자단 일동이라고 나갑니다. 의견 없으시면 5분 뒤에 성명서 발송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공지된 후 일부 기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22명의 성명서가 되었다고 한다.


성명서에는 자신들의 ‘땀내 나는 외곽 취재’를 몰라준다는 서운함도 있다. <PD수첩> 취재진의 땀내는 무시하는 이중성이 마음에 걸리지만, 사실 이건 맞는 얘기다.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법조기자도 많다. 꽤 오랜 기간 기자상 심사에 참여했는데, 법조기자들이 발굴한 훌륭한 기사들도 많았다. 문제는 능력 있는 개인이 오래된 관습과 기형적 구조라는 강력한 자장을 떨쳐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출입처의 폐해로 향한다. 마침 KBS가 출입처 제도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검찰만이라도, 그리고 우선 성명서에 불참한 몇몇 언론사만이라도 이 흐름에 동참했으면 한다.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한 기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PD수첩> 내용 일부에 대해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이 보도를 법조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계기로 삼겠다”는 겸허하고 의지에 찬 성명서를 다시 써달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일반 독자’들이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성명서를 써주었으면 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