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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논란’ 프레임

‘성폭력 범죄는 사회구조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에 비정상적인 한 개인의 일탈로만 간주해서는 안된다.’ 성폭력 범죄 대응에서 여성단체들이 줄기차게 강조했던 주장 중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언론사들이 포털 서비스 내 ‘픽(pick)’ 기사 선정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한 울산 초등학교 교사의 성희롱 사건 기사들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해당 보도들은 전형적인 ‘논란 기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논란이 있다’로 시작해서, 해당 교사의 언행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소개한 다음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문제적 발언과 행위를 불필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했고, 해당 교사가 온라인상에 게시한 반론을 단독 기사로 다뤄주기도 했다. 관습적으로 누리꾼 반응을 인용하는 것 또한 여전했다. 다양한 주체들의 반응을 나열하면서 ‘논란’으로 이름 붙인다. 


‘논란’ 프레임은 이 사건에서 진정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중한 진단과 논의의 부족을 낳았다. 일회적 일탈이자 기이한 사건이라는 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교사가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기사의 표현 역시 ‘적절’한지 의문이다. 무엇이 왜 부적절한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교사의 주장을 ‘반론’으로 다뤄주는 게 꼭 필요했는지 역시 불분명했다. 직접 취재를 바탕으로 한 기사도 드물었다. 전반적인 보도들이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분석이나 진단도 없이 실시간으로 사건을 매개하고 분노를 활용하여 주목도를 얻는 데 그친 것이다. 사건의 중요도에 견주어 볼 때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사건은 이미 학부모가 교육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담당 부서에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해결되지 않았고, 온라인 공간을 통해 주목을 얻고 나서야 다시 의제 설정이 되었다. 교육 담당 전문가들이 아동의 교육 환경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우리 사회가 스쿨미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일이기도 했다. 스쿨미투가 2018년 전국에서 일어났지만, 많은 경우 가해 교사들은 학교로 돌아와 여전히 교편을 잡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징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 아동·청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부터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오히려 성차별의 온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고,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교사에 의한 성차별, 성희롱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여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양한 성차별, 성희롱 피해 경험이 공유된다. 여성에 대한 비하와 성적 대상화가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권위주의적 문화 속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항의나 저항의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다. 아무런 제지가 이뤄지지 않아 교사의 성차별 행위가 반복되고, 학생이 문제제기를 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피해 경험이 누적되고 있다. 교육계의 구조적 성차별 해결을 위한 노력과 실천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스쿨미투 이후에도 주목할 만한 현장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더 큰 의제로 삼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남성의 성욕을 자연화, 정당화하는 성교육 표준안이나,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 SNS의 성차별적 내용 게시 등 우리 교육 현장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여전하다. 울산의 남성 교사 문제는 개별적인 기이한 사건과 논란으로 소비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차원의 문제 진단을 통해 대안을 구성해야 한다. 관행적 ‘논란’ 기사가 아닌, 우리 교육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학생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하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