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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따옴표·댓글 저널리즘 유감

언론의 보도는 사회·정치·경제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재정권의 유지도 언론의 은폐·왜곡 보도 때문에 가능했고, 역으로 민주화도 언론의 보도 덕분에 가능했다. 언론의 책임 있는 행동이 도덕 교과서 속의 한 줄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문제인 이유다. 언론의 보도는 개인의 삶을 바꿔 놓기도 한다. 이란의 네다 솔타니 이야기는 극적이다. 2009년 이란에서 시위 도중 여자 대학생 아그하 솔탄이 민병대 총탄에 맞아 사망했고, 관련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런데 언론은 솔탄 대신 성과 얼굴이 비슷한 솔타니의 사진을 잘못 내보냈다. 이후 이란 정부는 솔타니에게 자신이 죽지 않았으며 동영상이 거짓이라 증언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솔타니는 앰네스티의 도움을 받아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한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기사 한 줄, 표현 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나 자신이 직접 취재하고 검증한 사실이 아닐 경우 보도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언론의 취재 검증이 사라진 기사가 늘어나고 있다. 소위 유명인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 그대로 기사가 된다. 심지어는 댓글만으로 이루어진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에게는 평소 사회적 발언을 잘하는 유명인의 페북 확인이 취재 필수 절차인 모양이다. 유명인의 발언을 다룬 기사들이 만들어진다. 사실 유명인 중에는 전문가들도 많고, 다른 사람보다 내밀한 정보에 접할 기회가 많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거기에 유용한 기삿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도 검증을 거쳐야 한다. 따옴표로 묶는다고 언론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 유명인의 유명도와 더불어 언론의 영향력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사로 누군가가 솔타니와 같은 운명에 처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유명인의 발언이 근거 없이 추측, 음모들을 제기하는 경우 더 커진다. 유명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내린 결론인지 모르지만 발언 내용만 보면 근거가 없는 단순 추론 아니 심지어 예언이나 바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언론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을 기사로 다룬다. 그리고 이미 언론의 도움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한 그 사람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특정 사람들에게는 기정사실화된다. 소위 확증 편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언론은 따옴표를 쳤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그 발언으로 더 증폭되는 진영 논리와 이에 따르는 사회 갈등 등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언론은 댓글만으로 기사를 다루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주시가 자매 도시인 일본의 나라시와 교류 도시인 교토에 방호복과 방호 안경 등 방역 물품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언론이 일본의 댓글만으로 기사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공감을 많이 받은 부정적인 기사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서 보듯 댓글은 그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참고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반응이지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반응이라고 단정 짓거나 대표하는 의견이라고 전달하는 것이 정당할까?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대표적인 양대 포털에서 나타나는 댓글의 반응이 극명하게 다름을 언론이 모를 리 없다. 일본의 댓글을 다룬 사례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댓글이 마치 전체 여론을 반영하는 것처럼 기사를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론은 취재가 사라진 채 페북 내용이나 댓글만으로 작성한 기사가 단기간 클릭 수를 높일지는 모르지만 기반을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독자도 그런 기사는 피하는 게 맞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