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의 언론통제’ 개정판 낸 김주언 씨
‘기시감(旣視感)’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비판적 논객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정부가 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도 유사한 일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언론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그랬듯 현 정부는 대통령 측근을 방송사 사장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냈고, 정부를 비판한 언론인들을 가족이 보는 앞에서 구속·체포했다.
김주언 ‘언론광장’ 감사는 언론인 구속·체포 등 언론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던 독재정권 시대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남호진기자
1970~80년대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언론인들은 이 같은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86년, 월간 <말>지에 ‘보도 지침(전두환 정권이 언론사에 하달했던 기사 작성·편집의 기준)’의 존재를 폭로했던 김주언 ‘언론광장’ 감사를 지난 2일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만났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통제가 심각하잖아요. 그 내용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둘러서 개정판을 썼습니다. 초판이 나오고 개정판이 바로 나온 거죠. 많이 팔릴 대중적인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최근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니까 책의 출간이 시의적절하다는 말씀도 하시고요.”
-최근 언론계에서는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구속, 이춘근 MBC PD 체포 등 정부의 언론통제라고 해석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86년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당사자로서 지금과 80년대 상황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70~80년대보다 지금이 강도가 약한 편이긴 하죠. 그때는 중앙정보부(중정)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언론인을 사찰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문제가 있는 기사를 쓰면 이른바 ‘환문’이란 것을 해요. 중정으로 소환해서 물어본다는 뜻이죠. 기자들을 무조건 연행해서 중정 지하실로 끌고 갑니다. 고문을 하면서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을 알아낸 뒤 겁을 주고 돌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안기부에서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안기부 요원이 신문사 편집국이나 방송사 보도국에 상주하면서 신문 제작하는 것을 일일이 간섭하고 보도지침을 어겼을 때는 끌고 가서 고문하는 거죠.
박정희 정권 시절 기자들을 구속할 때 주로 적용했던 법은 반공법 또는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누설죄 등이 있었어요. 그나마 72년 긴급조치가 들어선 이후에는 법도 아니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를 씌워서 기자들을 끌고 갔습니다. 노종면씨 구속이 독재정권 시절보다 강도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인을 구속한 사례는 최근엔 거의 없었잖아요. 회사의 고발을 구실로 노종면씨를 구속했겠지만 제가 볼 때는 하나의 괘씸죄에 불과한 겁니다. 언론인을 구속하거나 해고해서 다른 기자들한테 겁을 주려는, 즉 위축 효과를 노리는 제스처이기도 하겠죠.”
-말씀하신 대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이 수사받는 것은 오랜만의 일입니다. 정부가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명박 정부가 지금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전부 언론 탓으로 돌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해 촛불집회가 인터넷 또는 비판 언론 탓이라고 생각해서 언론을 어떻게든 장악하려는 거죠. 방송 같은 경우엔 자기 사람을 앉혀서 자기한테 유리한 기사만 쓰게 하고요.
정부 비판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면 국민 여론이 반전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언론만 장악하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세월이 바뀐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국민 의식이 크게 성장하고 민주의식이 함양됐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옛날 개발독재 시절의 악습들만 남아있는 겁니다.
현재 공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정부 손에 들어갔습니다. KBS는 물론이고 공기업 자본이 많이 있는 YTN도 사장이 바뀌었죠. 또 8월 말이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의 임기가 만료돼요. 그럼 방문진도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바꿀 것 아닙니까. 정부 비판적 신문들의 경우는 정부가 광고주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해서 광고 통제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와 달리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처럼 정권에 우호적인 신문에 대해서는 방송까지 개방해주려고 하죠. 언론 구도를 현 정부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언론장악이라는 꼼수를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90년대부터 언론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권력보다는 자본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면 정치권력이 또 다시 언론자유에 대한 큰 위협으로 등장한 것 같습니다.
“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정치권력이 언론보다 우위에 있어서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했어요.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도 있었죠.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사에 많은 특혜를 줬단 말입니다. 그러다 87년 6·10 항쟁 이후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쇠퇴하고 권력의 공백기가 생겼는데 이곳을 비집고 들어온 게 자본권력이죠. 자본권력들이 언론을 교묘하게 통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언론이 자본의 통제를 받는다는 게 단순히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언론이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서 자본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치권력의 언론통제에서 자본의 통제로 바뀌다 다시 정치권력이 등장했습니다.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던 권위주의 시대로 역주행하고 있어요. 사실 언론 정책뿐 아니라 인권 정책이나 경제 정책 등 모든 정책들이 거꾸로 가고 있잖아요.”
-일부 신문들은 노종면 위원장의 구속 등을 비중있게 보도하지 않았는데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엔 억지 논리가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나 자신들의 논조에 반대하면 무조건 좌파라고 매도하는데 이런 건 인격 살인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들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과거 정치권력으로부터 탄압받던 시절에는 보수신문, 진보신문 구별 없이 어떻게든 언론 자유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노력하려는 흔적을 보였어요. 동아투위나 조선투위처럼 언론자유 수호 투쟁을 하다가 현장에서 쫓겨난 기자들도 많았죠.
그런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문들이 하나의 정파 신문이 됐다고 할까요.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한 겁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조·중·동이 스스로 비판언론이라고 자임했는데 비판언론은 무슨 비판언론입니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좌파라 매도하고 한국 사회를 보수 일색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했잖아요.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인터넷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현 정부는 언론인의 언론자유뿐 아니라 시민들의 언론자유도 제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아고라 폐지법’이라고도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은 커다란 악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이버모욕죄 신설, 제한적 본인 확인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인터넷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거죠. 언론계 사람들은 ‘미디악법’이라고 해서 신문법·방송법 중심으로 얘기를 많이 해왔는데 사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더 위험해요. 또 국정원법 개정안도 위험합니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넓히자는 건데 국정원이 통신기밀보호법까지 개정해서 도청·감청을 다할 수 있게 되면 이것이 바로 과거에 중정이나 안기부가 했던 언론인 사찰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처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결국은 연대해서 싸우는 방법 외엔 없다고 봅니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만이 싸우는 게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하든 서명을 하든 여러 방법이 있거든요. 저희는 그런 방법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 우리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치는 것인지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30% 대이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 국민들이 반대한다면 함부로 추진할 수 없거든요. 이른바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려고 끈질기게 시도했지만 결국은 1·2차에서 안 됐잖아요. 미디어 관련법을 다시 상정한다는 6월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활동 시한이 6월까지인데 위원회 활동이 아직 활발하지 않아요. 위원회에서 무슨 보고서를 낼지 두고 봐야겠죠.”
-YTN은 파업을 중단했고 노종면 위원장도 석방됐습니다. 노 위원장의 석방은 잘 된 일이지만 YTN이 파업을 끝낸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YTN 노조가 완전히 이겼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싸워온 투쟁의 기록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저는 YTN 노사가 협상을 할 때 편성권 독립 조항을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요새 편집권이나 편성권 독립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별로 없잖아요. 안타깝죠.”
-정부가 앞으로도 언론통제 사례를 제공한다면 책을 계속 고쳐쓰셔야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이신지.
“<한국의 언론통제>는 주로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 것인데 자본의 언론통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못했어요. 자본의 언론통제에 관한 편린이나 실상들은 ‘미디어오늘’이나 ‘기자협회보’를 보면 있긴 있어요. 삼성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광고가 들어와서 기사를 내렸다는 사례는 있는데 단순히 이런 문제만이 자본의 언론통제라고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사를 넣고 빼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언론인을 직접 회유하는 방식도 많이 있어요. 이런 기록들을 찾아내는 게 쉽진 않지만 언젠가는 자본의 언론통제에 관한 글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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