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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경향의 미래가치 선보인 ‘밥과 진보’ 기획(옴부즈만)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언론의 기본 기능이다. 이 평범한 진리가 새삼스러운 세상이 됐다. 현 정부의 당근과 채찍에 순응해 불의에 눈감고 불이익에만 안달한 주류 언론이 물을 흐린 탓이다. 지난해 말 한 시사주간지가 한국 사회를 빛낸 올해의 판결로 MBC ‘PD수첩’ 광우병 쇠고기 보도에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꼽았다. 언론의 본분 수행이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초 원리에 입각한 판결이 칭송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식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운 한 해를 또 보냈다. 흔들림 없이 비판의 필봉을 휘두른 경향신문에 경의를 표한다.

 비판, 그것만으로도 현재의 한국적 언론 지형에서 소중한 덕목이다. 하지만 비판만으로 역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흔히 비판을 넘어 대안까지 제시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대안 없는 비판이 무의미하단 뜻은 아니다. 다른 방식이 실재함을 드러냄으로써 비판의 지점을 선명하게 하고 지향점을 밝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보다 많은 호주의 사례를 내밀 때 한국의 고용 현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쉽게 깨닫는다. “네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지 말라”는 북유럽의 ‘얀테의 규범’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결핍된 우리 사회의 폐부를 설득력 있게 공략한다. 공정여행과 착한 소비에 나선 사람들 덕분에 가치 있는 일상의 실천을 찾기도 한다. 기실 대안적 방식의 제시가 현재의 부조리를 더 잘 들추어내는 경로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저절로 담보되는 게 아니다. 필히 거쳐야 할 수고로운 과정이 있다. 바로 기획이다.


 새해 첫날 경향신문의 특집 섹션 ‘밥과 진보’는 그 전형으로 손색없었다. ‘밥 먹여주는 진보’란 화두부터 쉽고 시의적절하며 생산적이었다. 무상급식 중인 초등학교와 생활진보 공동체 현장을 찾고 국내외 사례를 소개한 접근법은 화두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를 정치와 경제, 담론, 전문가 진단 등 딱딱하지만 필요한 영역의 논의로 연계시킨 대목에선 경향의 집요한 사명감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자 특별기획 ‘룰라의 소통 리더십’도 같은 맥락에서 탁월했다. 보수와 진보, 부유층과 빈곤층을 아우른, 변하되 변하지 않은 대통령 룰라의 성공 비결은 굳이 설파하지 않아도 우리의 문제를 적확히 짚어주었다. 누굴 꼭 집어 비판하지 않아도, 친서민 대통령의 요건은 포용력 있게 소통하며 진정성을 갖추는 것이라고 기사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같은 날 미디어면 머리기사인 KBS 김용진 기자 인터뷰도 인상적 기획이었다. 2008년의 보복인사에 이어 최근 정직 4개월이란 중징계를 받은 김 기자의 문제의식은 관영화된 KBS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알려줬다. 강변하지 않았음에도, KBS가 국민의 혈세 같은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나설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했다.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불의를 외면하지 않은 언론인의 발견도 위안과 용기를 주는 데 적합했다. 31일자 ‘김제동의 똑똑똑’이 ‘웃기는 앵커’ 최일구보다 ‘멸종 위기의 기자’ 김용진을 만나면 좋았겠단 생각이 스치긴 했다.

 29일자 12면에 소개된 대전 대덕구의 ‘배달강좌제’도 반가운 꼭지였다. 주민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뿐더러 ‘재능 나눔’형 강사 시스템을 도입한 이 평생학습 서비스는 지방자치의 참된 의미를 일깨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오찬·만찬비로 한 끼 식사에 수천만 원씩 펑펑 지출했다는 경향의 단독 보도가 바로 옆에 자리했으나 대조를 이루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새해 벽두의 ‘밥과 진보’ 기획에 너무 많은 공력을 기울인 탓일까. 지난주 지면에서 더 이상 빛나는 기획을 찾지 못했다. 좋은 기사가 없었단 얘기는 아니다. ‘느림보’ 경전선의 실태를 생생히 전해 ‘형님철도’ 예산이 왜 문제인지 꼬집은 27일자 12면 머리기사와 4대강에 속죄라도 하는 듯한 31일자 1면 사진기사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기사 대부분은 현안을 따라가고 분석하는 데 바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상식 밖의 이슈가 쏟아지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럼에도 뉴스정보가 봇물을 이루는 시대에 기획은 신문의 지속가능성을 견인할 미래가치임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대형 이슈가 예견된 당일의 사전 기획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1월1일자 종편채널 선정 건은 비교적 이에 부합했으나 12월29일자 미네르바 옭아맨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은 많이 모자랐다. 둘째, 편의에 따라 손쉽게 기획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주간 연재한 ‘세밑 릴레이 기고’는 너무 뻔한 기획이었다. 거대 담론, 그리고 첫 번째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